[자유성] 복장 불량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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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31  |  수정 2022-10-31 06:48  |  발행일 2022-10-31 제27면

아무리 점잖은 부장님이나 근엄한 선생님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맨땅이든 어디든 아무 곳이고 퍼질러 앉고 모자는 삐뚤게 쓰는 등 예비군 특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스포츠도 운동복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실력이 나온다. 복장이 그만큼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최근 '가야산 사랑 가을 산행' 행사가 열렸다. 부대 행사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도 열려 봉투를 한 장 받아 들고 출발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숨이 차서 잘 보이지 않던 쓰레기가 하산길에는 가끔 눈에 띄었다. 봉투를 배낭 옆에 매달고 다닌 까닭에 주운 쓰레기를 쉽게 봉투에 담을 수 있었다.

2016년 이 행사에 참석했을 때 플로깅에 아주 최적의 복장을 갖춘 참가자를 만났다. 깔끔한 등산복과 배낭에는 집게와 봉투를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 옆에 매달았다. 대구에서 참가했다는 그는 실제 등산로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쓰레기를 주우면서 산행을 했다. 당시에는 '플로깅'이니 '줍깅'이니 하는 이름조차 생소할 때였고 순수하게 우러난 마음에서 쓰레기를 치운 것이었다.

등산이나 산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기는 쉽지 않다. 허리를 구부리는 것도 귀찮지만 쓰레기를 담을 봉투도 준비해야 하고 집게가 없으면 장갑이라도 끼어야 한다. 이번 산행에서 몇 개의 쓰레기라도 주운 것은 주최 측이 나눠준 봉투와 장갑이 있었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산행을 나섰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있더라도 복장이 갖춰지지 않으면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런 면에서 나의 산행은 항상 복장 불량이었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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