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올빼미' 맹인 침술사 경수역 류준열…"시각장애인 역할이지만 눈 뜨고 연기…감정 수위조절에 집중"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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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08:46  |  수정 2022-12-02 08:51  |  발행일 2022-12-02 제39면
시각 제외한 오감 동원해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 힘든 만큼 의미 커
한의사 도움받아 침술 훈련…혈자리 몇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
데뷔 7년동안 10개 작품 찍어…필모그래피 100개 만드는 것이 목표

맹인 침술사 경수는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아 왕(유해진)의 총애를 받는 내의원이 된다.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궁궐에서 맹인은 모두를 안심시키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아픈 동생을 살리고 내의원에서 버티기 위해 '주맹증'이라는 사실을 함구하고 있다. 주맹증은 낮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희미하게 앞을 볼 수 있다. 그가 어느 날 밤, 소현세자(김성철)가 독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맹인이 유일한 목격자가 된 상황이다. '올빼미'는 '인조실록'에 실린 '(소현세자가)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는 한 줄의 미스터리한 역사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가상의 인물과 이야기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댔다. 그 중심에서 질주하듯 강한 몰입을 이끌어낸 건 경수로 분한 배우 류준열이다. 아는 자를 색출해내려는 음모와 죽음을 밝혀내려는 움직임 속에서 시종 팽팽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이는 류준열에게도 일종의 도전이었다. "배우가 눈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핸디캡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각을 제외한 오감을 동원해 경수의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이 힘든 만큼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류준열은 이처럼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안태진 감독의 말처럼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배우"다.

▶주맹증에 걸린 맹인침술사가 주인공인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다. 출연 제안을 받고 어떤 느낌이었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나 싶었다. (웃음) 내가 게으른 편이어서 핸디캡이 있거나 평소 해오던 공정과 다른 인물은 그동안 출연을 지양했다. 최대한 내 안의 것에서 빼낼 수 있어야 자연스러운 접근이 가능했고, 조금이라도 낯설면 아무래도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불편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욕심이 났다. 몰입감과 박진감이 넘쳤고, 관객들도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 빠져 볼 것 같은 기대와 확신이 있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경수는 한 테이크 안에서 다양한 호흡과 감정을 다채롭게 보여줘야 하는 녹록지 않은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고민했던 건 뭔가.

"개연성이었다. 관객들이 얼마나 그를 용납할지 고민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진짜냐, 가짜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개연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면 안에 실수로 붐 마이크가 보이더라도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고증이 필요한 역사극이지만 우리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맹인 역할이지만 눈을 뜨고 연기했다. 눈빛 연기로 인물이 갖고 있는 감정과 심리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관객들도 공감해주시는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주맹증에 대한 정보는 의학적 정의 말고는 거의 없는 편이다. 침술사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서도 많은 준비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 주맹증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을 만났다. 눈이 너무 부셔서 낮에는 거의 안 돌아다니고, 외출이 꼭 필요한 경우엔 선글라스를 낀다고 했다. 증상의 정도나 시력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대신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일가친지 중에 맹인이 계셨다. 명절에 모이면 가끔 그분을 뵙는데, 어린 마음에 되게 신기해했다. 나처럼 눈을 뜨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꿈을 꾸고 계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당시 느꼈던 감정과 느낌을 경수 캐릭터에 녹여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이 느껴지더라. 침술은 촬영 전부터 한의사에게 지도를 받았다. 두루마리 휴지가 꽉 차도록 침 놓는 연습을 하는 등의 노력으로 싱크로율을 높여갔다. 사람에게 침을 놓는 것과 비슷해 실제 한의사들이 연습하는 방법이라고 하더라. 이제 혈자리 몇 개는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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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남들이 보기 어려운 어두운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워진다. 그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핸디캡을 갖고 있지만 그 자체보다는 상징성에 주목했다. 경수는 평민의 신분으로 운 좋게 궁에 들어갔고,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의 비밀스러운 행동을 목격하고 의도치 않게 사건의 중심에 선다. 주맹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 아무런 힘도 없는 그의 처지가 어떻게 보면 진짜 핸디캡일 수 있다. 사람들은 그가 맹인이기 때문에 경계감을 풀고 편하게 대한다. 그 때문에 손해 보는 일도 많다. 정육점 주인이 고기의 중량을 속여 팔지만 경수는 모른 척 넘어간다. 궁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궁 사람들은 경수가 아무것도 못 본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거의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자의 타살을 목격한 후로 달라진다. 침묵하는 궁을 향해 인간의 자존감과 도리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설정했고, 동시에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거울이 됐으면 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배우 유해진과는 세 번째 호흡이다. 이번 현장에선 사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선배의 농담이 모두 생각이 날 정도로 현장에서 대화한 적이 별로 없다. 우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촬영 내내 진중한 모습이었는데, 앞서 드라마 '인간실격'을 함께한 전도연 선배를 통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게 베테랑 배우의 면모가 아닐까 싶다. 선배들이 솔선수범해서 현장의 분위기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느낌이랄까. 사실 해진 선배와는 애틋함과 끈끈함이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처음 만났을 때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아마 선배도 '이런 애가 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을 거다. '봉오동 전투'를 하면서 정말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선배가 아닌, 형과 동생이 됐다. 그리고 '올빼미'로 다시 만나게 됐는데 선배가 그간 관심을 갖고 나를 쭉 지켜보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친할수록 '잘한다, 못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데 선배는 내 연기의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울컥했다."

▶소현세자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감정연기를 할 때 수위 조절 실패다. 자기 감정에만 치우쳐 연기하다 보면 보는 입장에선 불편하고, '오버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작품은 그 수위 조절이 관건이었다. 특히 그 장면은 촬영, 조명, 미술 등 모든 스태프들이 작품의 의도대로 감정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공을 들였고, 그만큼 테이크도 많았다. 감독님과 매일 세 시간씩 통화를 하면서 이 부분을 어떻게 살릴지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눴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 번 더 해보자고 했을 만큼 열정을 다했다. 그런 열정과 진심이 조금이라도 티가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기에 집중하다 보면 종종 스스로도 놀라게 되는 몰입의 순간 같은 게 찾아올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이번 현장에선 어땠나.

"내가 연기를 잘해서 놀라는 순간보다는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배움'으로 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데, 그런 배움 이 두세 개 정도만 있어도 뿌듯하고 이 작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빼미'는 그 점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던 현장이다. 인조의 등에 침을 놓는 장면에서 해진 선배와 나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보통은 서로의 눈을 보고 연기를 하는 게 제일 자연스럽고 편한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느낌이 정말 색달랐다. 미세하지만 짜릿한 전율까지 느꼈다. 사람의 오감이란 게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최근 몇 년간 쉼 없이 달려왔고, 당당히 주연의 자리까지 꿰찼다. 무엇이 제작진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게 한다고 생각하나.

"나와 일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연기 잘하고 좋은 배우들이 많지만 이왕이면 까다롭지 않고 편한 배우가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내가 눈치를 좀 많이 보는 편이고, 사교성도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세 친해진다. (웃음) 그런 부분들을 좋게 보는 것 같다."

▶촬영할 때는 대본을 거의 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번 작업에선 어땠나.

"역시나 '올빼미' 대본도 새것처럼 깨끗하다. 대신 초고를 많이 읽고 캐릭터의 전사에 대해 많이 준비하고 들어간다. '연극연출론'을 보면 첫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접근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꽤 심도 있게 정리해 놓았다. 학부 때 되게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지금까지 내 연기론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첫인상이 정리되면 촬영에 임할 때 마음이 한결 편하다. 그런데 '올빼미'는 조금 달랐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민을 해야 했다. 화려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슈퍼 플레이와 엉뚱한 순간은 한 끗 차이라는 것도 느꼈다. 캐릭터 접근에 있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가끔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진짜 (연기를) 못했구나'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반성과 실수가 자양분이 돼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나은 모습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하고 마음이 편하다. 데뷔한 지 7년인데 지금까지 10개의 작품을 찍었다. 목표와 꿈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100대 명산이 있는 것처럼 괜히 나도 100개의 필모그래피를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 이대로라면 70년은 더 해야 한다. (웃음) 물론 주연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조·단역이라도 나를 필요로 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출연해 내 필모에 소중히 보태고 싶다. 지금처럼 과거를 되짚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늘 바쁘게 지냈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 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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