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대나무(1) 흰 눈이 덮어도 꺾이지 않는 푸른 지조·절개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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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6 08:09  |  수정 2022-12-16 08:11  |  발행일 2022-12-16 제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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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담양 죽녹원 대숲.

우리나라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으로도 사용하는 봉황(鳳凰)은 가장 상서롭고 신령스럽게 여기는 새다. 이 봉황은 많은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로, 영생의 생명력을 가진 최고의 상서(祥瑞)와 길상(吉祥)의 화신이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뜻한다. 봉황은 성군(聖君)의 덕치를 증명하는 징조로 옛 기록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만 먹는다고 한 것은 죽실이 그 어떤 것보다 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봉황의 음식인 죽실은 실제 접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나무 꽃도 마찬가지다. 평생 대나무 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나무는 50년이나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울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기 어려운 대나무 꽃이 무더기로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지리산 산길을 걷다가 보았다. 2009년 6월 전남 운봉에서 인월로 가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동편제마을로도 불리는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의 판소리 명창 송흥록·박초월 생가에서 잠시 쉬다가 흥부골을 거쳐 황매암으로 향하던 중 산길 옆에 있는 대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소규모의 대숲이었는데, 그곳 대숲의 대나무 모두가 꽃을 피운 상태였다. 꽃 자체는 별로 시선을 끌 만한 매력이 없다. 색깔이나 모양 등이 탐스럽거나 예쁘지는 않고, 향기도 없는 것 같았다. 이 꽃이 열매를 맺으면 봉황이 먹는다는 죽실이 된다.

대나무 꽃은 왜 보기가 어려울까. 대나무는 꽃을 피우는 다른 초목과 달리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 좀처럼 꽃이 피지 않는 대나무는 보통 50~60년 만에, 길게는 100년~120년 만에 꽃이 핀다고 한다. 대나무 종류에 따라 간혹 수년 만에 꽃이 피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대나무는 이처럼 꽃이 잘 피지 않지만, 꽃이 필 경우에는 대숲 전체에서 일제히 핀다. 대나무의 꽃은 대나무의 번식과는 무관한 돌연변이의 일종으로, 개화병(開花病)이라고도 한다. 일제히 꽃을 피운 후에는 모두 말라 죽는다.

대나무 꽃은 번식의 한 수단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해 대개 무리를 이루는데, 많은 대나무가 한곳에서 오랫동안 번식하면 땅속의 영양분이 고갈된다. 그래서 더는 죽순으로 번식할 수 없으면 대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라는 환경이 갑자기 변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자손을 남기기 위해 대숲 전체가 함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남긴 후에는 대부분의 대나무가 말라 죽는다는 것이다. 씨앗이 실제로 다음 세대로 발아하는 데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야생 동물과 곤충의 소중한 먹이가 된다고 한다.

대나무 열매는 죽실(竹實), 죽미(竹米), 야맥(野麥) 등으로도 불리었는데 종류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밀알·보리알을 닮았다고 한다.

대나무의 결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옛 기록에도 나온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조선 태종 때 강원도 강릉의 대령산(大嶺山) 대나무가 열매를 맺어 그 모양이 보리와 같고 찰기가 있으며 그 맛은 수수와 같아서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따서 술도 빚고 식량으로 썼다'라고 적고 있다.

대나무에 꽃이 피는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주기적으로 꽃이 핀다는 설, 영양분의 결핍이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설, 병충의 피해가 직접 개화의 원인이 된다는 설, 식물 고유의 생리작용에 의해 대나무 내의 성분이 변화해서 꽃이 핀다는 설,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원인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이런 대나무는 '나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나무 종류가 아니라 풀의 일종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대나무(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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