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대나무'(2) 바닷가 방풍 '해장죽' 화살로 쓰던 '이대' 울산 태화강 홍수 방지 '십리대숲'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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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6 08:12  |  수정 2022-12-16 08:14  |  발행일 2022-12-16 제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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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보게 된 대나무 꽃. 대나무에 꽃이 필 때는 이처럼 대숲의 모든 대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운다고 한다.

대나무는 나무 종류가 아니라 풀 종류에 속한다. 식물 분류학 기준으로 보면 쌀밥을 먹게 해주는 벼와 같은 과(科)인 볏과에 속하는 풀의 일종이다. 식물 중 나무로 분류되려면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어야 하고 부피생장을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대나무는 단단한 부분은 있지만, 부피 생장을 하지 않는다. 위로는 자라도 옆으로는 거의 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는 나무와 풀의 경계선에 있지만, 나무에 속하지 않는다.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고산 윤선도(1587~1671)도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읊은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은 것은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여러해살이식물인 대나무는 세계적으로 종류가 매우 많다. 120속 1천250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종이 분포한다. 대부분의 대나무 품종은 중국과 일본에 자라는데 중국에 500여 종, 일본에 650여 종이 자생한다.

대나무는 습기가 많은 열대지방에서 잘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과 제주도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자라는 가장 흔한 대나무는 왕대다. 높이 10~30m, 굵기는 지름 10㎝ 내외로 자란다. 이 왕대를 비롯해 솜대, 맹종죽(죽순대), 해장죽, 조릿대 등이 있다. 2010년 우리나라 지역별 산림 통계에 따르면 대숲(죽림)이 전체 산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1%에 불과하다. 전국의 죽림 분포 비율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가 84%를 차지한다.


나무과 아닌 풀과, 열대지방 잘 자라
50~100년 만에 꽃 피운 후 말라죽어
국내 가장 많은 높이 10~30m '왕대'
죽순으로 모친 병 낫게 한 '맹종설순'

담양 죽녹원·거제 맹종죽 명소 인기
문인·서화가 詩·묵죽 소재 널리 쓰여


구갑죽1
대나무 줄기가 거북등 모양 같다고 해서 '구갑죽'으로 불리는 대나무(부산 아홉산숲).


◆대나무 종류

맹종죽(孟宗竹)은 어린 죽순을 식용으로 먹기 때문에 죽순대라고도 부른다. 맹종죽은 키는 왕대와 비슷하지만, 훨씬 굵다. 굵기는 20㎝ 정도. 맹종죽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삼국시대 효성이 지극한 맹종(孟宗)이라는 사람의 모친이 오랜 기간 병환을 앓고 있었는데, 한겨울 어느 날 모친이 대나무 죽순이 먹고 싶다고 했다. 맹종은 바로 눈이 쌓인 대밭으로 가 죽순을 찾았지만, 죽순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죽순을 구하지 못한 맹종이 눈물을 흘리자 눈물이 떨어진 그곳에 눈이 녹고 대나무 순이 돋아나서, 이 죽순을 먹게 된 모친의 병환도 낫게 됐다. 효심의 눈물로 하늘을 감동시켜 죽순을 돋게 했다는 이 이야기에서 '맹종설순(孟宗雪筍)'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맹종읍죽(孟宗泣竹)'이라고도 한다.

솜대는 높이 10m 내외로 자라며, 어린 순이 올라올 때 표피에 붙은 작은 흰털이 솜처럼 보인다고 해서 솜대라고 부른다. 솜대의 죽순도 식용으로 쓰인다. 오죽(烏竹)은 표피가 검은색이어서 한자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오죽이라고 부른다. 특히 강릉에서 자라는 오죽이 유명하다. 오죽은 처음에는 녹색으로 자라다가 성장하면서 점차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조릿대가 있는데, 높이는 1~2m 이내로 자란다. 우리나라 남부지방 높은 산에서 많이 자라며 한약재로 이용한다. 화살로 쓰이던 이대는 높이 3~4m로 자라는 대나무이며, 비슷한 종류로 신이대가 있다.

해장죽(海藏竹)은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높이는 4~5m 정도로 자란다. 방풍을 겸한 주택가 담장용으로 많이 심었다. 보기 드문 구갑죽(龜甲竹)이라는 대나무도 있다. 대나무 줄기 모양이 독특한데, 표피가 거북등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구갑죽이라고 부른다. 구갑죽은 중국이 원산지다.

대나무는 오래전부터 인간 삶의 일상에서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대표적으로 곧게 자라는 특징 때문에 지조 있는 선비를 상징했다. 한편 인도의 북동부 지방에서는 대나무가 재앙의 상징이라고 한다. 대나무 숲이 한꺼번에 열매를 맺으면 쥐들이 엄청나게 증식하고, 그 쥐들이 민가를 덮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엄청난 대나무 숲이 50년 정도마다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이때 쥐의 개체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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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 대숲.

◆대나무숲 명소

▷담양 죽녹원=눈다운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구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눈이 내리는 풍경, 눈 덮인 세상은 어디나 보기가 좋다. 푸른 대숲에 흰 눈이 내리는 풍경은 각별하게 더 좋다. 2006년 12월 하순, 멋진 대숲에 눈이 펑펑 내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전남 담양 죽녹원에 갔을 때다.

죽녹원은 31만㎡ 규모의 대숲으로,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조성해 2003년 5월 개원했다. 울창한 대숲 곳곳에 2.2㎞의 다양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사색의 길, 선비의 길, 철학자의 길, 성인산오름길 등 8가지 주제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죽녹원에 조성된 시가문화촌에는 면앙정, 송강정 등의 정자와 죽로차제다실, 한옥체험장, 소리전수관인 우송당을 한 곳에 재현,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옥카페도 있다.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도 유명하다. 울산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 태화강 양편의 대숲으로, 길이가 4㎞(폭 20~30m)나 된다. 일제강점기에 잦은 홍수 범람으로 인한 농경지 피해가 잇따르자 주민이 홍수 방지용으로 심은 대나무들이 오늘의 십리대숲으로 변한 것이다.

태화강대공원의 중심에 있는 이 대숲은 울산 12경 중 최고로 꼽힌다. 대숲으로 들어서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70만 그루의 대나무가 빼곡한 숲이 만들어내는 초록 터널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거제 맹종죽테마공원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에 있는 대나무테마공원이다. 10만㎡ 부지에 맹종죽을 이용한 산책로, 모험의 숲, 죽림욕장, 지압체험장, 대나무 공예체험장,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거제 맹종죽은 1926년 하청면의 영농인 신용우가 일본 산업시찰 후 귀국할 때 맹종죽을 가져와 성동마을 자기 집 앞에 심게 된 것이 최초라고 한다. 내한성이 약한 맹종죽은 남부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며, 우리나라 맹종죽의 80% 이상이 거제에서 생산되고 있다.

▷담양 소쇄원 대숲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간 전통 원림(園林)인 담양 소쇄원의 대숲도 멋지다. 소쇄원을 찾으면 입구에서 먼저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뻗어있는 왕대들이 맞이한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멋진 이 대숲 길을 지나면 작은 개울과 정자, 연못, 돌담 등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소쇄원을 지나면 개울 오른쪽으로 또 다른 드넓은 대숲이 펼쳐진다.

◆정판교와 대나무

대나무를 좋아하고 대나무를 잘 그린 서화가로 유명한 중국의 판교(板橋) 정섭(1693~1765)은 대나무의 성품을 묘사한 글도 많이 남겼다. 정섭이 그림의 화제(畵題)로 지은 '대나무와 바위(竹石)'라는 시가 있는데, 한글로 풀이하면 이렇다.

'청산을 악물고 놓아주지 않은 채/ 뿌리를 쪼개진 바위틈으로 내려 세웠네/ 천 번 만 번 두들겨도 꼿꼿하기만 하니/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람이야 불든 말든.'

문인이자 서화가인 정섭은 청나라 건륭 연간(1661~1722)에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에서 활약했던 여덟 명의 대표 화가를 이르는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핵심 인물이다. 시서화 모두에 뛰어났던 그는 괴팍한 성격과 독특한 예술적 성과를 아우르는 의미의 '광방(狂放) 예술가'로 통하면서 관직에 있을 때는 보기 드문 선정을 펼쳐 백성들이 생사당(生祠堂·살아있는 관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을 세울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던 청백리이기도 했다. 늦게 관리를 했으나 백성을 위한 구제책을 두고 상관과 부딪히면서 결국 사직 후 고향에 돌아가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다 별세했다.

정섭의 묵죽도 화제 중에는 이런 시도 있다.

'해마다 대나무 그려 맑은 기운을 사는데/ 맑은 기운 사건만 가격은 낮춰 부르네/ 고아함은 많길 바라고 돈은 적게 내려 드니/ 대부분 주점 주인에게 주고 만다네.'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시다. 다음은 1751년 59세 때 쓴 '대나무(竹)'라는 글이다.

'우리 집에 두 칸짜리 초가집이 있어 남쪽에 대나무를 심었다. 여름날 새 대가 자라서 이파리가 나오고 녹음이 사람에게 드리워질 때, 거기다 작은 걸상 하나 놓으면 시원하기가 참으로 그만이다. 가을 가고 겨울 올 무렵, 병풍 살을 가져다가 양쪽 끝을 잘라 옆으로 완자 창틀을 만들고는 거기다 얇고 깨끗한 종이를 발랐다. 바람이 잘 들고 날이 따스할 때면, 추워서 굳어 있던 파리가 완자창 종이를 치면서 동동거리는 작은 북소리를 낸다. 그때 대나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늘 이 어찌 천연의 그림이 아니겠는가. 무릇 내가 그리는 대나무는 결코 누구에게 사숙한 바가 없다. 대부분 저 종이창과 회벽, 햇살과 달그림자 속에서 얻었을 뿐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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