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보이스피싱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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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9 06:43  |  수정 2023-01-19 07:05  |  발행일 2023-01-1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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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기자〈사회부〉

1주일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수고하십니다. 대구지검 특수부 이○○ 사무관입니다. 서민지씨가 연루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건 관련해 진위 확인차 연락드렸고요. 지금 혹시 통화 괜찮으신가요."

검찰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였다. 통화할 시간이 되느냐고 물어주는 넓은 아량을 가진 '5급' 사무관에게 "시간이 없다"고 답하자마자 전화는 뚝 끊기고 말았다.

하필 전화를 받은 사람이 대구지검 출입기자였으니, (자칭)대구지검 이모 사무관으로서는 아까운 시간을 날린 셈이다. 우연이지만 그날 오전 대구지검에서는 검사장과 법조기자단의 신년 티타임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당하는 자에게 이렇게 운 좋은 상황이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매년 어마어마한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다. 대구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대구에서는 593건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했고, 피해액만 102억3천여만 원에 달했다.

예전에는 전화를 거는 이들 특유의 말투가 코미디 소재로 활용됐을 정도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가볍게 여겼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조직폭력배가 개입된 기업형 조직이 적발되는가 하면, 문서 위조·악성 프로그램 유포 등 범행 수법도 전문화됐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언제든 포위망에 걸려들 수 있는 환경이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한다는 점은 더 무섭다. 영화 '보이스'에서 보이스피싱 기획실 총책 '곽 프로'는 "보이스피싱은 공감이야. 보이스피싱은 무식과 무지를 파고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거지. 이 차이가 1억이냐, 10억이냐를 가르는 거야"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보이스피싱은 단순히 남의 돈을 가로채는 사기 범행이 아니라 사람의 외로운 감정부터 공포감, 절박함 등을 가로채는 악질 범죄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방식으로 일평생 일군 재산과 가정을 한순간 잃게 된 사람들이 허탈감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마는 광경을 우리는 수없이 봐 왔다.

현실을 반영하듯 보이스피싱 사건 법원 판결문에는 '이 범죄가 사회 전반에 불신 풍조를 양산함에 따른 폐해가 크며 사회가 부담하는 직간접적인 비용도 늘고 있다'는 문구가 쓰이곤 한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개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본다는 점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예방법은 범행 고도화 속도에 비해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서민지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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