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그늘 "어르신에게 키오스크 사용은 너무 어려워"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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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2 18:00  |  수정 2023-02-12 18:01  |  발행일 2023-02-13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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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대구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한 어르신이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에서 결제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1시30분 대구 중구 한 프랜차이즈 식당 안. 어르신 한 분이 메뉴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Kiosk·터치스크린 방식 무인주문기) 앞에 섰다. 하지만 그는 한참 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스레 카운터로 가 직원에게 구두로 주문했다. 무인주문기를 통해 주문하려다 결국 포기한 것이다. 이날 지켜본 결과 상당수 어르신은 기기 조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식당에서 만난 박모(74·대구 중구)씨는 "스마트폰도 잘 못쓰는데 기계로 음식을 어떻게 주문하겠냐"며 "메뉴를 하나하나 고르고, 결제까지 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혼자 낑낑대다 오류가 나기라도 하면 뒤에 기다리는 젊은 사람 눈치를 안 볼 수 없다"고 했다. 키오스크와 대면 주문을 혼용하는 식당에서도 어르신 손님 대부분은 대면 주문을 선호했다. 기자가 혼용 주문이 가능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한 시간가량 지켜본 결과, 키오스크가 있어도 손님들은 카운터로 향했다.

키오스크의 보편화 추세와 선호도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대구지역 식당·대형마트 등에서 키오스크 시스템 도입이 늘고 있지만 고령층과 기기 작동이 서툰 40~50대 등 이른바 '디지털 취약계층'은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최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97.9%가 이용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노년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은 키오스크를 어려워하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57.2%가 '주변에서 키오스크 이용을 포기하는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키오스크 주문을 포기한 이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으로 파악됐다.

키오스크 보편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은 비단 노년층만이 아니다. 젊은층 사이에서도 불편을 호소한다. 키오스크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4.5%는 "키오스크 시스템을 도입하는 매장이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답했지만 73.9%는 "모든 매장이 키오스크로 대체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 카페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44)씨는 "키오스크 이용이 어렵진 않지만 만약 선택을 해야된다면 대면 주문이 편하다. 주문하고 싶은 메뉴를 말하고 결제수단만 선택하면 직원이 알아서 포인트를 적립해 주고 현금 영수증도 챙겨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키오스크 사용이 더 보편화하면 솔직히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키오스크도 함께 발전할 텐데 '그 속도를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대구 유통업계에서도 키오스크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푸드코트 메뉴 주문, 상품권 판매, 주차비 정산 등의 용도다. 하지만 키오스크 상용화를 위한 대응책 마련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키오스크 활용교육과 기계 접근성을 높일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유통업계에선 별도 교육과정 마련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관계기관 간 협조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인건비 등으로 고용주들이 인력을 쓸 때 여러 고민이 있는 데다가 사회가 디지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생기는 과정"이라며 "매장 점주들이 단순히 인건비만 생각해 매장을 기계화하거나 서비스 편의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고객이 심리적으로 많이 당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객을 배려하기 위해 디지털 안내사 육성 및 배치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는 사람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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