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착하는 고향사랑기부금제…이어지는 기부 행렬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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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1 15:17  |  수정 2023-03-02 07:18  |  발행일 2023-03-02 제3면
지자체마다 톡톡 뒤는 홍보 전략
운용에 대한 구체적 방안 모색…내년부터 활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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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금제가 도입되기 직전인 지난해 말, 경북도와 지역 각 지자체는 적지 않은 고심을 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본의 선례가 있어 어느 정도의 성공가능성은 점쳐졌다. 일본은 2008년 저출산 등으로 농촌이 위기에 빠지자 '고향납세' 제도를 도입했다. '도시 거주자'가 '고향 또는 원하는 지역'을 지정해 2천엔 이상의 기부금을 내는 제도다. 세액 공제 절차를 간소화해 기부 편리성을 높이는 한편, 세액 공제 인센티브를 높이고 충실한 답례품을 제공했다. 그 결과 고향납세 기부액은 2008년 814억엔에서 2020년 6천724.9억엔으로 13년 만에 8.2배 증가했다.


고향사랑기부금제 시행 두달이 지나자 경북지역 대부분 지자체들은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출향인사는 물론 특정 지역을 사랑하는 타지인의 사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이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하는 한편 더 많은 출향인사와 외지인이 지역에 기부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찾기에 들어갔다. 시민들이 쾌척한 쌈짓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 이어지는 기부행렬
지난달 27일 현재 고령군에 접수된 고량사랑기부금은 6천373만원이며 기부인원은 223명이다. 10만원 기부자가 120명으로 가장 많았고 10만원 미만 81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100만원 이상 고액기부자는 17명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대구가 88명이었으며 경남( 48명), 경북(28명), 서울(23명), 경기(19명), 기타(17명) 순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 금액은 차이가 나지만 기부자의 거주지와 금액 비율은 고령군과 대동소이하다.


눈에 띄는 고액기부자도 적지 않았다. 포항시에 따르면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활약 중인 '월드컵 영웅' 황희찬이 최근 고향사랑기부금 최고 한도액인 500만 원을 기탁했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윤종진 국가보훈처 차장 등 출향인사들도 동참했다.


경북도에서는 함경도 출신의 탤런트 이정길씨가 경북도 고향사랑기부자 '1호'가 됐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손준호 축구국가대표선수가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영덕이 고향인 이들은 지난 1월 말 영덕군을 찾아 각각 500만원을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전달했다. 손준호 선수는 지난 2015년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매년 1천만원씩 영덕군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구미에서 태어나서 자란 형제가 생애 첫 월급 전액을 고향사랑기부금으로 구미시에 맡겼다. 홍다윗·현석 형제는 구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대학을 마치고 의료·자동차 분야 연구원으로 취업해 받은 첫 월급을 기부했다.


홍씨 형제는 "우리 형제가 뜻을 모아 고향 구미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고향 사랑 기부에 동참했다"며 "사회 첫걸음을 기부로 시작할 수 있어 기쁘고 고향 발전에 작은 힘을 보태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부친의 고향인 성주군에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울릉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언휘 종합내과 원장은 울릉군에 500만원을 기부했다.


농협 직원들의 단합된 기부도 작지 않은 울림을 줬다. 농협고령향우회(임도곤 외 4명)는 지난 1월 25일 '5·5·5 프로젝트' 성공 기원을 위해 555만원을 고령군에 기탁했다. 5·5·5 프로젝트는 인구 5만명, 신규주택 5천호, 청년인구 5천명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고령군의 목표다.


박병규 농협은행 수석부행장, 전병택 농협중앙회 대외협력국장, 이재호 농협 구미시지부장, 이재근 농협 고령군지부장 등 구미 출신의 농협 은행과 중앙회 간부는 1월 31일 고향 사랑 기부에 동참했다.


지난달 22일 청도 대표 특산물인 한재미나리를 먹기 위해 한재골을 찾은 서울 강서구 까치산우회의 이준호 회장은 고향사랑기부금을 모금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현장에서 1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미션 "효율적인 홍보 전략을 짜라"
경북도는 오는 6일 도청사에서 '경북사랑 1013 캠페인' 전개를 위한 고향사랑청년 홍보단 발대식을 갖는 등 청년들의 고향사랑기부제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10만원을 기부하면 10만원의 세액공제와 3만원 상당의 답례품을 지급하는 경북사랑 1013 캠페인을 통해 전국의 출향 청년들이 더욱 실속 있게 고향사랑기부금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포항시의 고향사랑기부금제 홍보에는 트로트 샛별로 맹활약 중인 가수 전유진이 적극 나서고 있다. 전유진의 응원 영상은 포항시 고향사랑기부금제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유진은 "포항은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항상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곳"이라며 "고향 포항을 위한 착한 기부, 포항시 고향사랑기부제에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일 시장을 비롯한 경산시 직원들은 지난 1월 20일 경산역에서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내고향 경산을 응원해 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설 명절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에게 혜택 등을 안내했다. 또, 대구시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대구지역을 운행하는 버스 10대와 택시 130대에 래핑광고를 하고 있다. 경산시는 홍보대사인 트로트 가수 류원정의 응원 모습 등을 담은 홍보 영상도 추가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경북지역에서 두번째로 많은 기부금을 모은 의성군은 자매결연을 한 수원시와 대구시 북구·달서구 등의 지자체 소식지를 활용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성주군은 자매도시인 전남 무안군과 경남 의령군의 직원 간 상호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이들 지자체와 고향사랑기부금제 홍보물 비치 등을 협의하고 적극적으로 협조를 약속받았다.


◆기부금 어떻게 운용하나

경북지역 각 지자체는 기부금 운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마련에 들어갔다. 포항시는 지난해 10월 구성된 기금운용심의위원회와 포항시의회 및 시민아이디어를 모아 운영방침을 결정한다.


고령군과 의성군은 청소년과 주민복지 지원 등과 같은 기금사업이 기부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라고 판단, 사업 발굴에 주력할 방침이다. 기부금의 수입과 지출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고향사랑기부금운용심의위원회를 구성한 경산시는 이번 달에 부서별 사용 의견을 청취하고 시민들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다.


영주시와 예천군은 향후 2년 정도 기부금 사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예천군 관계자는 "올해 처음 제도가 도입된 만큼 우선적으로 기금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기금이 얼마만큼 적립될지도 모르는 만큼 당장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차후 회의를 통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지역 각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금제의 좋은 취지를 악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일고 있다. 지자체의 방만한 홍보전으로 예산이 낭비되거나 기금 심의위원회 운영을 잘못해 기부금이 사라지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제가 기본적으로 애향심에 크게 기대는 만큼 지역감정을 부추겨 각종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경북연구원 김광석 박사는 "과열되면 지자체 간 경쟁 등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당장 기부금 총액 제한 등의 조처를 할 필요는 없다. 초기에는 적은 금액이 모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부

▩고향사랑기부금제
개인이 주소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다. 안동시민이면 안동시와 경북도를 제외한 241개(광역 또는 기초) 지자체에 기부가 가능하다. 1인당 한도는 연간 500만원이며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이 공제된다. 10만원 초과분은 16.5% 공제해 준다. 100만원을 기부하면 24만8천원(10만원 +초과분 90만원의 16.5%인 14만8천원)을 세액 공제받을 수 있다.
지자체는 기부금의 30% 이내에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기부금 사용처는 제한된다.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 사업과 문화예술·보건증진·청소년육성보호 등 주민 복리증진에 필요한 사업에만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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