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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고구려, 백제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시기 신라는 반도의 동남쪽 변방에 위치하여 국가형성이 늦었을 뿐 아니라 대외관계에서도 불리한 약소국이었다. 그러했던 신라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그중에는 국가 목표를 위하여 전 국민의 힘을 하나로 묶어내는 포용의 정신과 제도가 있었다. 통일의 주역이 된 김춘추와 김유신은 신라 사회의 본류가 아니었다. 신라는 종래 성골이 독점하던 왕위를 진골인 김춘추에게도 개방하고 멸망한 가야의 후손인 김유신을 신주류로 받아들였다. 출신 성분이나 계파보다는 능력과 인품을 우대하면서 국민 통합과 국가 역량을 결집해 나간 결과가 통일로 이어졌다.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이러한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계속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통일의 성취에 도취한 신라 지배층은 골품제를 강화하고 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차별하면서 귀족들의 특권 강화와 자기들끼리의 권력투쟁에 매달렸다. 최치원을 비롯한 신진 세력들은 기득권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초야에서 숨어 살거나 오히려 후백제, 고려 건국에 뛰어들었다.
공동체는 그 형태를 불문하고 서로 끌어안고 힘을 모으면 번창하게 된다. 통합과 포용을 실천해 나가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지만 패거리를 만들고 상대방을 가지 쳐내는 순간부터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 삼태기의 흙도 마다하지 않기에 태산이 될 수 있고 한 줄기의 물이라도 모두 받아들이기에 바다가 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연의 이치도 이러하거늘 이성과 감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머리로는 이해가 가고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라 귀족들인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러나 권력으로 자만과 욕심에 눈이 멀게 되면 내 편만으로도 국가경영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나의 지지기반이 되는 사람들끼리만 힘을 합쳐도 모든 것이 다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남과 나누기 어려운 권력의 속성상 적을 만들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물론이요, 공통의 적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그 안에서 파를 나누고 갈라치기가 횡행하게 된다.
그러나 내 편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처음에는 방관자로, 나중에는 적대 세력으로 뭉쳐 정권의 뒷다리를 잡는다. 조선 후기의 상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모든 백성의 능력을 총동원해도 국가발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백성을 양반과 천민으로 아들을 친자와 서자로 나누고, 양반 중에서는 자기와 정치적 견해나 이익을 같이하는 당파에 속한 사람들만을 선호하더니 급기야는 세도가의 문중에 속하는 몇몇 사람들만으로 나라를 경영했으니 어떻게 국운 융성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나와 사회문화적 배경이 비슷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면 편안하다. 유유상종은 생명체의 본성이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까지 포용하여 함께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평범한 일반인의 경우라면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 조직이나 공동체의 지도자라면 이 본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도자의 생각과 태도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은 편안해하는 반면 권력자는 자꾸 불편함을 느끼는 정치가 제대로 되는 정치이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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