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걷기도 취미가 되나요?

  • 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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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5  |  수정 2023-06-05 08:50  |  발행일 2023-06-05 제19면

[문화산책] 걷기도 취미가 되나요?
임수현 <시인>

시인님은 취미가 뭐예요? 취미는 걷기예요. 걷기도 취미가 되나요? 말해 놓고 나니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독서라든가, 영화감상 같은 그럴듯한 취미를 말할 걸 그랬나 싶었다. 걷기가 취미가 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시간이 나면 틈틈이 걷는 걸 좋아하니 취미에 부합되는 것 같다. 둘이 걷는 것보다 혼자 걷는 걸 좋아하니 딱히 동호회 따위를 결성할 일도 없다. 시간 맞춰 가는 요가나 수영은 일단 그 시간을 비워야 한다는 데서 나와는 맞지 않는다. 여럿이 같은 동작을 따라 하는 게 성미에 맞지 않거니와 잘 따라하질 못한다. 딴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인데 취미로 뭘 들으러 가기엔 적합하지 못한 조건이다.

내가 선택한 건 걷기, 그러니까 팔을 마구 흔들며 걷는다기보다 설렁설렁 이것저것 봐가며 걷는다. 운동과 산책 중간 정도랄까. 내 이런 취미 생활에 도움이라도 되라는 듯 집 근처에 들성지와 지산샛강이 있다. 들성지는 집에서 50m만 나가면 되니 늦은 밤에도 걷기 좋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마음이 무거울 때면 사람들을 피해 혼자 걷는다. 저수지 속에는 생명이 보글보글 끓고 있어 무섭기보다 안심이 된다. 컴컴한 저수지가 또 다른 세상으로 연결된 통로 같아 나는 걷다가 물끄러미 물속을 들여다본다. 잉어처럼 큰 물살이 몸을 일으켜 수면을 흔든다. 산발적으로 물풀이 흔들리고 뭔가 커다란 생명이 수면 아래로 지나간다. 수면이 크게 일렁일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집을 나설 때 돌이킬 것이 많은 마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운동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운동 아니라고 할 것도 없는 딱 그만큼의 걷기를 한다. 그러니 살이 빠지거나 몸매가 좋아지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지산샛강은 미안하게도 남들은 잘 몰랐으면 싶은 곳이다. 그러기엔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말이다. 들성지가 밤에 찾는 곳이라면 이곳은 아침 일찍 가는 곳이다. 집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어 내린 커피와 사과 반쪽을 가지고 그곳을 찾는다. 아침에 막 깬 샛강의 맑은 얼굴을 보는 게 좋다. 샛강에 핀 가시연이나 파피루스, 물무궁화를 보며 두 바퀴 정도 걷는다. 막 잠에서 깬 수양 버드나무 아래 잠시 서 있다가 온다. 지산샛강은 혼자 걷기도 좋지만 때로 둘이 이야기하며 걷기도 좋아 오랜 친구 향화에게 "걸을까?" 문자를 넣는다. "좋아!" 짧은 답이 온다. 오늘은 둘이 걸으러 간다.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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