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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조선 중기에 시행된 대동법은 조선 최대의 경제사회 개혁이었다. 대동법은 지방의 특산물을 국가에 바치는 세금인 공물을 현물 대신 쌀로 납부하고 나라는 이를 재원으로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구매하여 쓰도록 하는 법이다. 공물은 재산의 많고 적음과 상관 없이 가구 수를 기준으로 부과된 까닭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품을 징수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민폐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대동법은 토지면적을 과세표준으로 한 까닭에 조세정의가 실현된 것은 물론이요 관리들의 부패 근절과 시장의 발달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법이 경기도에 시범 실시된 후 전국에 확대되는 데는 무려 100년이 걸렸다. 그만큼 양반이나 대토지 소유자를 비롯한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했고 법 시행과정에서 챙겨야 할 사안 또한 많았음을 뜻한다.
대동법의 성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알고 헌신한 사람이 김육(金堉)이다. 불우했던 시절 10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의 형편을 체험한 뒤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대동법의 확대시행에 정치가요 관료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신념은 참으로 백성을 위하는 길이란 고상한 명분이나 이론에 집착하는 대신 세제의 공평을 실현함으로써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는 실질을 내세워 주자학 이상론자들에게 맞서고 백성이 편리하게 여긴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눌러 나갔다. 동시에 제도 시행에 필요한 실무를 꼼꼼히 챙기면서 관계자들을 독려해 나갔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법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왕에게 개진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도 교육, 노동, 연금을 필두로 수많은 개혁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명분을 확보하여 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일과 실천과정에서 기득권의 저항을 뚫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행복의 증진과 삶의 질 개선이 그 내용이라면 치밀한 사전준비와 유연한 적용이 추진과정에서 챙겨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일한 개혁과제가 책상 위에 오르지만 정치적 명분에 집착하거나 기득권 설득에 실패함으로써 원칙합의, 각론이견으로 구호와 논의만 무성한 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히려 앞뒤 생각하지 않고 툭툭 던지는 설익은 개혁안에 국민들은 실망하고 내 삶과는 동떨어진 개혁내용에 피곤하기만 하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과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현장에서 단계별로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김육과 같은 경세가가 필수적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들의 책임과 자세가 중요한 이유이다. 내일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추진하되 제도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부작용과 문제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살피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나 자주 대하는 사람을 닮아가게 마련이다. 이에 필자는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청 로비에 그 기관의 업무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들의 입상을 세우는 안을 제안한다. 중앙 경제부처의 로비라면 김육이 제격이다. 출퇴근 때마다 그의 상을 쳐다보면서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기득권의 저항에 맞서 실질을 추구했던 김육을 본받자고 다짐한다면 일을 추진하는 자세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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