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숨겨져 온 일본의 6·25전쟁 '참전'

  • 최범순 (사) 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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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9  |  수정 2023-06-19 07:31  |  발행일 2023-06-19 제25면

[단상지대] 숨겨져 온 일본의 6·25전쟁 참전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기타 모리오(北杜夫)의 '부표'(浮漂, 1958)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김포 비행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렇다기보다 살기가 돌았다. 오랫동안 나와 관계가 없었던 공기이자 광경이다. F84 전투기가 바로 눈앞에 죽 늘어서 있고 헬멧을 쓴 조종사가 좌석에 앉아 출격 대기를 하고 있다. 꼬리에서 '슈~' 소리를 내며 분사되는 제트기류가 주변 대기를 흔든다. 이 팽팽한 공기는 확실히 내 가슴을 꽉 조이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쾌감인지 불쾌감인지 확실하지 않다."

소설 속 시간은 '1951년 초여름'이고, 장소는 '김포 비행장'이다. 이렇게만 보면 일본인 작가가 6·25전쟁을 소재로 쓴 소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충격적이다. 소설 시작 부분은 미군 복장을 한 채 미군 군용기에서 내리는 일본인 '나기야마'가 바라본 풍경이고 다른 일본인 8명도 함께 김포 비행장에 내리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7명은 1945년 이전 일본 육·해군 장교 출신이다. 일본군 출신자들은 '왠지 익숙한 옛 둥지로 돌아온 것 같은' 기쁜 미소를 짓는다. 물론 이들도 모두 미군 복장을 하고 있다.

기타 모리오의 소설 '부표'는 오랫동안 극비로 숨겨져 온 일본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기록한 의외의 작품이다. 일본이 6·25전쟁 때 미군 병참기지 역할을 했고 수만 명에 이르는 일본인이 미군을 위한 수송 및 수로 안내, 기뢰 제거, 통역 업무 등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이 글에서 말하는 '참전'은 이미 알려진 간접 참전이 아니다. 일본은 훨씬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많은 일본인이 미군 혹은 한국군 신분으로 다양한 6·25전쟁 전투에 참여했다. 그 인원은 아직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2019년 6월에 간행된 일본 주간지의 특집 제목 '일본과 한국전쟁 : 일본인 8000명이 '참전'한 국제 내전'을 보면 일본인 참전 규모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확인된 일본인 참전 사망자만 57명이다.

기타 모리오의 소설 속 일본인들도 중국 공군과 북한군 간의 교신을 도청하기 위해 1951년 초여름 서울에 온 것이다. 이들은 미군으로 신분 세탁을 하고 전투 훈련을 받은 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소설 속 일본인들이 작전을 수행한 장소는 필자가 확인한 바로 김포 인근 개화산과 고려대 본관이다. 고려대 본관은 실제로 6·25전쟁 당시 미군 제5공군 통신대에 제공되었고 이 상황은 1954년 12월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6·25전쟁 참전 극비 사실은 일본에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책, 마이니치 신문의 특집 연재, 다큐멘터리 형태로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NHK는 2020년에 18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은폐된 전쟁 협력 : 한국전쟁과 일본인'을 방영했고 같은 내용을 책으로도 출판했다. 해당 책은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관련 연구는 이보다 앞선 2010년대 초반 일본계 여성 연구자 논문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6·25전쟁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유의해야 할 양상이기도 하다.

휴전협정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은폐된 부분도 많고 치유할 것도 많다. 또한 오랜 기간 끝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매우 이례적인 전쟁이다. 왜 6·25전쟁은 70년 동안 '휴전'인 채로 남아 있을까. 누가 혹은 무엇이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가로막고 있을까. 최근 일본 움직임과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이 중요한 질문을 되뇌게 된다. 6·25전쟁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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