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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
기타 모리오(北杜夫)의 '부표'(浮漂, 1958)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김포 비행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렇다기보다 살기가 돌았다. 오랫동안 나와 관계가 없었던 공기이자 광경이다. F84 전투기가 바로 눈앞에 죽 늘어서 있고 헬멧을 쓴 조종사가 좌석에 앉아 출격 대기를 하고 있다. 꼬리에서 '슈~' 소리를 내며 분사되는 제트기류가 주변 대기를 흔든다. 이 팽팽한 공기는 확실히 내 가슴을 꽉 조이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쾌감인지 불쾌감인지 확실하지 않다."
소설 속 시간은 '1951년 초여름'이고, 장소는 '김포 비행장'이다. 이렇게만 보면 일본인 작가가 6·25전쟁을 소재로 쓴 소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충격적이다. 소설 시작 부분은 미군 복장을 한 채 미군 군용기에서 내리는 일본인 '나기야마'가 바라본 풍경이고 다른 일본인 8명도 함께 김포 비행장에 내리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7명은 1945년 이전 일본 육·해군 장교 출신이다. 일본군 출신자들은 '왠지 익숙한 옛 둥지로 돌아온 것 같은' 기쁜 미소를 짓는다. 물론 이들도 모두 미군 복장을 하고 있다.
기타 모리오의 소설 '부표'는 오랫동안 극비로 숨겨져 온 일본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기록한 의외의 작품이다. 일본이 6·25전쟁 때 미군 병참기지 역할을 했고 수만 명에 이르는 일본인이 미군을 위한 수송 및 수로 안내, 기뢰 제거, 통역 업무 등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이 글에서 말하는 '참전'은 이미 알려진 간접 참전이 아니다. 일본은 훨씬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많은 일본인이 미군 혹은 한국군 신분으로 다양한 6·25전쟁 전투에 참여했다. 그 인원은 아직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2019년 6월에 간행된 일본 주간지의 특집 제목 '일본과 한국전쟁 : 일본인 8000명이 '참전'한 국제 내전'을 보면 일본인 참전 규모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확인된 일본인 참전 사망자만 57명이다.
기타 모리오의 소설 속 일본인들도 중국 공군과 북한군 간의 교신을 도청하기 위해 1951년 초여름 서울에 온 것이다. 이들은 미군으로 신분 세탁을 하고 전투 훈련을 받은 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소설 속 일본인들이 작전을 수행한 장소는 필자가 확인한 바로 김포 인근 개화산과 고려대 본관이다. 고려대 본관은 실제로 6·25전쟁 당시 미군 제5공군 통신대에 제공되었고 이 상황은 1954년 12월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6·25전쟁 참전 극비 사실은 일본에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책, 마이니치 신문의 특집 연재, 다큐멘터리 형태로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NHK는 2020년에 18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은폐된 전쟁 협력 : 한국전쟁과 일본인'을 방영했고 같은 내용을 책으로도 출판했다. 해당 책은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관련 연구는 이보다 앞선 2010년대 초반 일본계 여성 연구자 논문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6·25전쟁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유의해야 할 양상이기도 하다.
휴전협정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은폐된 부분도 많고 치유할 것도 많다. 또한 오랜 기간 끝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매우 이례적인 전쟁이다. 왜 6·25전쟁은 70년 동안 '휴전'인 채로 남아 있을까. 누가 혹은 무엇이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가로막고 있을까. 최근 일본 움직임과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이 중요한 질문을 되뇌게 된다. 6·25전쟁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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