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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
젊어서 택시기사, 화물차 기사로 일했던 남자는 50대에 뇌졸중으로 몸 한쪽이 마비되어 일을 못 하게 되었다. 병은 악화일로를 걸어 언어장애까지 왔고,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남자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게 사회라고 생각하고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갔다. 2003년 2월18일 '너 죽고 나 죽자'의 심정으로 휘발유를 채운 통을 들고 지하철을 탄 그는 지하철이 중앙로역으로 진입할 무렵 라이터를 켜 통에 불을 붙였다. 18년이 넘게 지났지만 대구시민은 물론 전 국민이 잊지 못하는 대구지하철방화 참사의 시작이었다. 그 사건이 '참사'로까지 번진 데에는 여러 다른 요인이 있었지만, 출발은 불행하다고 느낀 한 사람의 깊은 좌절감과 절망감에서 나온 사회에 대한 분노였다.
대구시민의 한 사람이자 당시 사회부 기자로서 현장 취재를 하던 나는 남의 불행으로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함께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현실적으로, 깨달았다. 물론 불행하다고 해서 그 불행과 아무 연관성이 없는 타인이나 사회 일반에 적개심을 품는 게 정상적이지는 않고 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빌미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나와 전혀 상관없이 각자의 생을 살아가는 어느 타인의 불행으로 나나 내 가족이 희생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눈앞에서 벌어진 그 분명한 '팩트' 앞에서 나는 두려워 몸을 떨었다.
변호사가 되어 형사사건 변호인으로 일하며 수많은 범죄자를 만나면서 18년 전 깨달음은 자주 '새로고침' 되었다. 내 사건은 아니지만 2019년 경남 진주에서는 발생한 아파트 방화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40대 남자가 새벽에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계단에 숨어 있다가 대피하는 주민들을 흉기로 찔렀다.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어렸을 때부터 여러 공장을 전전했던 그는 20대 때 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쳤다.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폭력성과 피해망상이 커졌다. 재판에서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없고, 그동안 살면서 당한 불이익과 사회의 무시에 대해 항의할 정도였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20대 여성의 뉴스를 보면서 또다시 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대학생 조카가 앱을 통해 과외를 하고 있어서 18년 전 지하철참사 때 느낀 것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 두려움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 어머니, 아버지와 잇따라 헤어져 할아버지와 줄곧 살았고, 아버지의 재혼에 극심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취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물은 없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에 사로잡혀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불특정 대중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형태의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형사절차만으로 사건을 끝내서는 안 된다. 범죄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피해자나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서 왜 그런 '괴물'이 성장할 수 있었는지 분석과 대책이 따라야 한다. 누가 어떤 불행을 겪든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지원망이 탄탄히 구축되어야 그 타인과 상관없는 나의 안전, 내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현실적인 이유인가? 그 길이 윤리적으로도 옳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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