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發 배터리 녹색장벽…추억의 '탈착식 휴대폰' 돌아오나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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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6  |  수정 2023-07-06 08:00  |  발행일 2023-07-06 제12면
유럽發 배터리 녹색장벽…추억의 탈착식 휴대폰 돌아오나
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2020년, 한 초등학생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 초등생이 올린 게시글은 '과학 숙제로 창의적인 발명품을 개발해야 한다'로 시작한다. 아이는 평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배터리가 없을 때 충전기에 연결하고, 휴대용 보조배터리를 사용하기에 번거로운 점이 많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생각해낸 발명품은 다름 아닌 '탈착식 배터리'다. 아이는 스마트폰을 살 때 배터리를 두 개 이상 제공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평소 배터리 하나는 스마트폰 기기에, 나머지는 미리 충전한 뒤 스마트폰이 방전됐을 때 교체할 수 있도록 하면 편리하겠다며 자신의 발명을 소개했다.

◆탈착식 배터리의 귀환

유럽發 배터리 녹색장벽…추억의 탈착식 휴대폰 돌아오나
이 사례 주인공이 실제 초등학생인지 아니면 탈착식 배터리를 경험한 어른인지 명확히 알 순 없다. 10년 전만 해도 탈착식 배터리는 너무 흔했다. 애플은 아이폰 시리즈에서 탈착식 배터리를 제공한 적이 없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2014년 출시한 '갤럭시 S5' 모델까지 기기 뒷면 덮개를 열어 배터리를 빼낼 수 있었다.

그런데 조만간 스마트폰 업계 시계가 10년 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4일 유럽연합(EU) 의회는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켰다. 소비자가 손쉽게 배터리를 탈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배터리 탄소발자국 제도, 리튬·니켈 등 광물 재사용 재생원료 사용, 배터리 여권제도 등도 포함됐다.

구체적 이행 방법 등을 담은 하위 법령이 2024~2028년 제정될 예정이다. 특히 9월 중 '지속 가능한 휴대폰 및 태블릿 설계-에코디자인' 법안이 통과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밀착한 내용이다. 2025년 시행이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환경과 탄소중립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일체형 배터리는 자원 낭비를 일으킨다. 소비자가 배터리만 교체해도 될 일을 기계 전체 교체 주기를 앞당겨서다. 폐배터리 수거와 재활용에도 어려움을 발생시켰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제품 수리권' 옹호 단체 'Repair.EU'는 2030년까지 판매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30% 절감된다고 했다 . 코발트·희토류·인듐 등의 희소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기기 교체 건(3천900만건)이 줄어 198억유로(약 28조원)의 불필요한 지출도 막을 수 있다.


EU '지속가능한 배터리법' 규제 속도
"일체형 구조 휴대폰 교체주기 빠르고
폐배터리 재활용도 어려워 자원 낭비"

일체형 디자인만 고집한 애플 '초비상'
삼성은 탈착식 배터리 제품 생산망 유지
긴밀 대응 속 공급선 확대 기회 전망도



◆'정체성 흔들리는 애플' vs '그나마 나은 삼성전자'

유럽發 배터리 녹색장벽…추억의 탈착식 휴대폰 돌아오나
갑작스레 과거로 회귀해야 하는 업계는 난감하다. 일체형 배터리 기술 개발과 개선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 인력을 투입했는데 이제 와서 내려놔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업계 표준이 일체형 배터리로 모인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디자인이다. 일체형 배터리를 적용하면 더 얇고 가벼운 스마트폰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방수·방진 기능도 염두에 뒀다. 기기를 여닫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일정 수준의 틈은 불가피하다. 덮개에 손상이라도 생기면 방수·방진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기업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일체형 스마트폰은 배터리 교체가 쉽지 않아 배터리 수명이 떨어지면 기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매년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는 기업들엔 꾸준히 소비자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인 셈이다.

애플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아이폰 시리즈는 첫 제품부터 최신 모델까지 모두 일체형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다. 올해 9월 발표가 유력한 17번째 모델, '아이폰 15'도 탈착형 구조로 변경한다는 발표나 예측은커녕 이렇다 할 입소문조차도 없다.

애플은 이미 한 차례 EU발(發) 소동을 겪었다. 지난해 EU 의회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충전 규격을 2024년 말까지 'USB-C' 타입으로 통일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자 규격인 '라이트닝' 단자를 쓰던 애플은 아이폰 15부터 USB-C 타입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과거 탈착형 배터리 생산 경험이 풍부하고, 지금도 일부 저가형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갤럭시 엑스커버5' 모델은 배터리 탈착형 구조다. 방수·방진 최고 등급인 IP68을 지원하고 있다. 먼지는 완벽히 차단하고, 1.5 m 깊이의 물속에서도 30분간은 안전하다.

◆산업부 "국내 기업과 대응 긴밀히 준비하겠다"

아직 법안 시행까진 시간이 있다. 물론 예외 조항도 있다. 안전 문제와 연결된 경우엔 일체형 배터리가 허용된다. 습한 환경에서 주로 사용하는 제품이나 웨어러블 기기가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예외 조항이 협상의 여지를 일부 남겨둔 셈이다.

국내 정부와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찾아갈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특정 기업에 차별적이거나 국내 기업에만 불리한 조항은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이번 법을 계기로 공급망과 제도를 선제 정비하면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부는 "EU의 배터리법 주요 조항 본격 시행까지는 시간이 있다. 국내 기업들도 법 요건 충족과 하위법령 제정 등에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그동안 'EU통상현안대책단'을 중심으로 긴밀히 대응해 왔다. 특히, 광물별 재생원료 관련 적극 대응한 결과, 폐배터리에 한정되던 재생원료 출처를 배터리 제조 폐기물까지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하위법령 제정이 중요한 만큼 국내 기업들과 함께 긴밀히 준비하겠다. 사용 후 배터리 관리 규정, 탄소 배출량 평가 기법 등 관련 제도들을 마련하고, 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등 관련 기술 개발도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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