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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건<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
등단은 아직 먼 기약이지만 왕왕 시를 쓰며 대구의 골목과 길로 다녀보곤 한다. 골목과 길을 걷다 우연한 공간과 시간을 마주하게 되면 이름 모를 감정이 쏟아져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만히 내버려진 감상들을 주워 적어두곤 한다.
동성로 골목 사이를 다니다 우연히 '노르웨이의 숲'에 닿은 적이 있다. 노르웨이의 숲. 하루키를 생각하는 이도 있을 테고 눈 내린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테지만 동성로 안 '노르웨이의 숲'은 칵테일 바다. LP가 있는 곳이며 손때 묻은 책장과 책 그리고 음악의 이름을 닮은 술이 있는 곳이다. 주인장이자 바텐더의 취미는 낡은 책과 음악과 시간을 수집하는 것. 그곳에서 해묵은 이상선집(李箱選集)을 본 적이 있다. 몽롱한 시간이 밤을 온통 채웠던 기억이다.
대구엔 바다가 없는데 파도고개가 있다. 달서4-1 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가다 보면 파도고개 길을 완전히 통과하는데 고저 차가 높아 일렁이는 모습이 파도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파도고개 주위로는 물길이 흘러간 듯 골목을 따라 미로마을이 있다. 골목마다 벽화를 품고 있는 마을이지만 재개발이 되어 옛 흔적을 오롯이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이 살고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낮은 지붕을 지키고 있다.
어스름 질 무렵 고산골은 가로등 불빛만 있어 도시 속에 숨은 산 아랫마을의 정취가 있다. 그곳에서 카페 '담소'를 마주한 적이 있다. 가지 전구가 불 밝은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출입문을 찾을 수 있고,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마당이 있으며 계절마다 피는 꽃이 있다. 카페에는 소소한 예술이 소담하게 펼쳐지는 날이 있는데 어느 날엔 시였고, 어느 날엔 영화였고, 가보지 못한 또 어떤 날엔 음악이기도 했다.
홍어와 빈대떡 냄새가 물씬 나는 방천시장은 신천변의 제방을 따라 터를 잡았다 하여 '방천'이라 불린다. 어린 시절 축구공을 들고 뛰놀던 시장통이 김광석의 노래로 북새통을 이뤘고, 한땐 젠트리피케이션이 거리를 지나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방천 거리엔 옛 시장의 냄새가 배어있다. 광석의 노래가 가득한 골목에 앉아 시를 쓰다 보면 막걸리 한 잔 마신 기분으로만 살고자 했던 한 사내가 떠오르곤 한다.
대구의 골목과 길엔 그렇듯 진하게 밴 옛 기억과 현재의 삶이 뒤엉켜 살아간다. 골목과 길을 찾아 걸으며 쏟아진 감정과 버려진 감상을 주워 시(詩)로 적어두는 것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고 조심스레 남겨본다.
신민건<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신민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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