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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수흐바타르 광장. 광장 가운데 수흐바타르 기마상이 서 있다. |
15년 전인가 보다. 나의 몽골 첫인상은 중국의 내몽고자치구였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리 간판들이었다. 꾸불꾸불 그림 같은 몽골문자가 중국 간체자와 병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말은 모두 중국어를 사용했고, 정작 몽골어를 들은 기억은 없다. 그 1년 뒤 중국 사람들이 '외몽고'라고 부르는 몽골국을 방문했을 때 또 한 번 낯선 거리풍경에 당혹스러웠다. 간판이 모두 러시아의 키릴(Cyrillic)문자였고, 몽골문자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제야 몽골이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내몽고와 외몽고의 구분은 순전히 중국 입장에서 만든 용어이다. 이러한 '내외'의 구분은 중국 땅에 만주족의 청나라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청나라가 고비사막 이남, 즉 막남(漠南)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면서 막남을 '내몽골', 고비사막 이북의 막북(漠北)을 '외몽골'로 칭하게 된다. 몽골 분단의 배경에는 또 차르 러시아도 한몫했다. 17세기 무렵 차르 러시아가 동방 진출을 꾀하면서 두 나라의 완충지로 삼은 지역이 바로 '외몽골'이기 때문이다. 결국 청나라의 몽골에 대한 종주권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권을 맞바꾸면서 몽골을 둘러싼 두 나라의 분쟁은 매듭을 짓는다. 이처럼 주변 강대국의 이익 때문에 분단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쨌든 몽골문자를 사용하는 내몽골과 몽골어를 사용하는 외몽골이 합치면 온전히 말과 문자가 일치되겠다고 생각했다. 외몽골에서 키릴문자 전용 정책이 도입된 것은 1941년이다. 몽골 민족주의를 억압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몽골문자 복원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들리는 바로는 내년부터 몽골문자 사용을 의무화한다고 하니, 80여 년 만에 몽골문자가 복원될 모양이다.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 올스', 즉 몽골국이다. '몽골'이라는 단어는 본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점차 민족이나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했다.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몽골을 '몽고(蒙古)'라고 부른다. 1990년에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한 몽골 정부가 '몽고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몽골족에게 시달려왔던 중국인들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조합하여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단어'라며 변경을 요청하여 지금은 '몽골'이 공식적인 명칭이다.
몽골의 독립 역사는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에 힘입고 있다. 이때 몽골족이 첫 번째 독립혁명을 일으켰으나 1920년 중국 국민당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1921년 7월에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두 번째 혁명을 일으켰다. 수흐바타르(Sukhbaatar)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인민의용군이 소비에트 적군과 연합하여 중국군과 러시아 백군을 수도 후레에서 몰아낸 후 복드(Bogd)를 칸(황제)으로 추대하여 '인민입헌군주제' 정부를 수립하였다. 1924년에는 다시 '몽골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하여 1992년까지 이어졌다. 소련에 이어 국제적으로 승인받은 세계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 다시 민주공화국 체제로 전환하여 1992년 2월부터 국호를 '몽골국'으로 변경했다.
몽골의 인구는 약 345만7천명(2023년)이며, 동서 2천394㎞에 남북도 1천259㎞나 되는 큰 나라이다. 한반도의 7배 정도 크기인데, 이 가운데 목축지 면적이 80%나 된다. 우리가 몽골하면 떠오르는 낭만적인 초원이 유목민 몽골족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광활한 초원 가운데 몽골 사람 절반 가까이 몰려 사는 대도시가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rnbaatar)이다. 원래 이름은 '후레'였단다. 설마 '후레자식'이라는 욕과는 상관없겠지? '오랑캐의 포로'라는 '호로(胡虜)'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우리말의 어원이 몽골에서 온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상상의 나래가 뻗어간다. 아무튼 후레에서 울란바토르로 변경된 것은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부터이다.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이니, 사회주의 혁명을 강조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울란바토르의 도시 역사는 몽골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1639년부터 시작된다. 유목민 몽골족이 이곳을 정착지로 정한 것이다. 청나라는 이 지역을 '울타리를 친 초지'라는 뜻의 쿠룬(庫倫)이라고 불렀다. 울란바토르는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0년 58만여 명이었던 인구가 지금은 160만명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 뒤를 잇는 에르데넷이나 다르한 등의 도시가 10만명을 넘지 않으니, 울란바토르의 인구 집중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유목 인구가 줄어들고 정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울란바토르로 몰린 것이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풍경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곳곳에 우리나라 편의점이 있었고, 익숙한 우리 식품들이 즐비했다. 울란바토르의 가장 큰 쇼핑센터도 이마트라고 하니 이곳에서 먹거리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도로 위의 자동차도 달라졌다. 우리나라 중고차가 점령하고 있던 도로에는 일본 자동차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운전대가 오른쪽이어서 타고내릴 때마다 늘 헷갈렸다. 처음 왔을 때 한글 상호를 그대로 붙인 채 거리를 달리는 우리나라 중고 버스들을 보고 내심 뿌듯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몽골에 비포장도로가 많아 내구성이 좋은 일제 차를 선호한단다. 왠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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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흐바타르 광장의 정부청사 가운데 있는 칭기즈칸 좌상. 좌상 서쪽에는 그의 아들 2대 칸 오고타이칸, 동쪽에는 그의 손자이자 5대 칸으로 원나라 초대 황제가 되었던 쿠빌라이칸 동상이 있다. 그리고 칭기즈칸 앞의 두 기마상은 몽골 전사인 보루추와 무흘라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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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흐바타르 광장의 몽골 독립영웅 수흐바타르 기마상. |
울란바토르의 중심은 수흐바타르 광장이다. 몽골의 독립을 이뤄낸 영웅 수흐바타르의 이름을 딴 곳이다.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2013년에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자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에 몽골 인민당과 수흐바타르 후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2016년 최종 승소하여 이름을 되찾았다. 몽골의 정치체제 변화가 광장의 이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광장 중앙에는 말 위에서 진격하는 수흐바타르의 동상이 높게 솟아 있다. 광장 주위로는 박물관과 오페라극장을 비롯하여 각종 쇼핑몰과 호텔, 오피스 등이 몰려 있어 중심가를 형성하고 있다. 북쪽에는 정부종합청사가 있고, 건물 앞 중앙에는 칭기즈칸의 대형 좌상이 수흐바타르를 노려보듯이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마치 몽골의 근대 독립 영웅이 차지한 공간에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제국의 황제가 자리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느낌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실제 이 동상은 수흐바타르 기마상과는 달리 2006년 몽골제국 창립 800주년을 맞아 새롭게 만든 좌상이다. 사회주의 색채를 걷어내고 민족의식을 고양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그 중심에는 늘 칭기즈칸이 빠지지 않는다. 2010년에 울란바토르 인근 초원에 건립한 50m 높이의 거대한 칭기즈칸 기마상이 그렇고 지난해 개관한 칭기즈칸 박물관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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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박물관에 입장하면 바로 나타나는 칭기즈칸의 대형 초상화. |
칭기즈칸 박물관은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국립박물관 옆에 있던 자연사박물관을 옮기고, 그 자리에 9층짜리 최신식 박물관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에 개관한 국립칭기즈칸박물관은 1만3천여 점의 전시품을 가진 몽골 최대의 박물관이다. 칭기즈칸 기마상과 함께 본격적인 몽골 민족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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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박물관 꼭대기의 황금 매 조각상. |
건물 외형부터 독특했다. 건물 상단은 '게르'처럼 둥근 돔 형태이며, 그 위에는 몽골족의 상징인 황금 매 조각상이 앉아있다. 또한 외벽 정면에는 몽골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다섯 명의 칸을 의미하는 5개의 황금장식이 붙어있다. 높다란 문을 들어서니 2층 벽까지 이어진 거대한 칭기즈칸의 초상화가 압도하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3층부터 상설 전시가 시작되는데, 몽골 최초의 국가인 '훈 제국의 청동기시대'부터 8층 '몽골의 세계적 자랑거리'까지 역사적 시대순으로 구성했다. 마지막 9층의 '칭기즈칸 명예의 전당'은 외관처럼 지름 25m, 높이 15m짜리 거대한 게르였다. 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강력한 진동음을 내도록 설계된 이 게르 안에는 칭기즈칸의 거대 동상이 들어설 예정이다. 제왕의 궁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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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
현재 이탈리아에서 제작 중이라는 이 동상은 13m 높이에 180㎏의 황금이 들어간단다. 칭기즈칸을 국민 통합의 매개로 삼고자 하는 것이리라. 사실 칭기즈칸은 몽골 곳곳에서 마주친다. 하다못해 가장 유명한 몽골 보드카 이름도 칭기즈칸 아닌가. 거기에 '칭기즈칸 골드'처럼 '골드'까지 더하면 최고급이 된다. 제작 중인 동상처럼 말이다. 이처럼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일단 고급으로 인정받는단다. (계속)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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