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쓸모를 이어가는 삶

  •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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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1 06:47  |  수정 2023-12-12 11:22  |  발행일 2023-11-2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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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다. 당일배송, 새벽배송, 로켓배송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일 만큼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몇 번의 클릭으로 집 앞까지 물건이 배송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사는 것도 쉽지만 버리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집에는 쓸모를 다하기도 전에 넘쳐 버리는 물건들이 많고 그럼에도 무언가를 습관적으로 계속 사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면서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과 새로운 상품들로 쉽게 대체되는 현재의 생산-소비 체제에 의문과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치앙마이식 바느질을 통해 옷을 직접 지어 입고 수선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연 염색된 헴프 실을 이용해 치앙마이 고유의 방식으로 천을 엮는 자수 기법인 치앙마이 바느질은 한 땀 한 땀 고르지 않아도, 가지런하게 수놓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틈틈이 모여 집에 있는 천으로 옷을 만들고 구멍 난 양말에 수를 놓았다. 시장에 가서 치자를 산 뒤 직접 실에 천연 염색을 해보기도 했다. 먹고 남은 포도 껍질 또한 좋은 재료가 되어 주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지어진 옷과 수선된 양말은 하나뿐인 특별한 것이 된다.

쓸모를 이어가는 일을 바느질뿐 아니라 다른 것에도 적용해 볼 수 있었다.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간 식기를 일본의 도자기 수선 방식인 킨츠키 방식으로 수리하는 워크숍을 들으며 그동안 버렸던 깨진 식기가 생각날 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식기는 생각보다 무척 근사했다. 금 간 자국을 그대로 드러낸 채 다시 쓰임을 얻은 식기는 아픔의 흔적도 생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몸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틈을 메우고 옻칠을 하는 과정은 꽤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원래의 모습과 다른 무늬가 생긴 식기는 그동안 완전하다고 여겨온 상태에 대한 정형화된 틀을 깨트려 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과정이 번거롭고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편리함과 효율성만을 좇아온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면 우리는 조금 더 수고롭고 불편해져야 하지 않을까. 시간과 정성을 들인 물건들이 나를 둘러싸자 물건을 대하는 방식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입고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주어진 용도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쓰임을 다했을 때 다른 쓸모를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사고 버리는 일에 신중해졌다. 손길이 더해진 것들을 곁에 두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삶 또한 애착을 두고 성심껏 살고 싶게 만들어 준다.

의류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나 공장 가동화로 인한 대기 오염, 폐기물로 뒤덮인 지구 곳곳을 생각하면 무력하고 암울했다. 하지만 낙관하기 힘든 상황일지라도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이 즐겁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거창한 주제의식이나 문제의식이 꼭 출발점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여러 방식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자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자연에서 유래한 재료가 어떻게 색을 내는지 바라보고, 얇은 바늘의 감각을 손끝으로 느끼며, 미세한 틈을 메우는 간격을 감각하는 일은 이상하게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했다. 쓸모를 이어 나가는 일에는 분명 수고와 불편함이 뒤따르지만 금세 지나가 버리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지친 이의 벌어진 틈새를 봉합하고 이어주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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