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 회장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만든 게 최고 보람"

  • 최수경,박종진,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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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0 20:04  |  수정 2024-03-11 07:28  |  발행일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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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오 회장.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이 말처럼 "조직의 나아갈 길에 있어 중요한 건 결국 방향성"이라고 늘 강조한 사람이 있다. 2018년 5월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DGB금융지주 수장에 오른 김태오 회장이다. 이달 28일을 끝으로 40여간 금융맨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김 회장은 마지막 6년을 오롯이 DGB금융그룹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취임 당시 3곳뿐이던 계열사는 현재 11개로 늘어났다. 은행에만 집중됐던 수익구조를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 VC(벤처투자사) 등으로 다각화했다. 영업권 제약이 없는 디지털 공간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시스템을 강화한 모바일 금융채널 'IM뱅크'는 전국 금융권 앱 상위권에 올려놨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 선진화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CEO육성 프로그램을 마련, 자사 임직원들의 리더십 강화에 힘을 쏟았다. 회장 취임 전 최고경영자 결정에 거수기 역할만 하던 사외이사도 그룹 의사결정의 중심에 세웠다. 이사회사무국은 회장 산하에서 이사회 직속으로 재편했다. 이같은 지배구조 혁신작업은 금융당국은 물론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부러워할 정도다. 인사에선 파벌주의와 계파주의가 발을 못딛게 했다.


현재 DGB금융지주는 다시 도약대에 서 있다. 주력계열사인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목전에 뒀다. 김 회장의 뇌리에는 아직도 온통 DGB금융의 미래와 지역민에 대한 걱정뿐이다. 뼛속까지 DGB맨이 된 상태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3연임을 포기하고 조용한 노년의 일상으로 돌아갈 그를 지난 5일 회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백발의 점잖은 노신사는 무거운 짐을 벗게 돼 홀가분한 듯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40여년간 '금융 외길'을 걸었다. 입행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해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삼성물산처럼 국외사업이 많은 곳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결국 택한 곳이 외환은행이었다. 입사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해외 영업점에 가기위해 은행업무와 독일어 공부를 병행했다. 독일어능력시험까지 합격했다. 하지만 외국지점 발령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독일 프랑크프루트 코메르츠 뱅크(Commerzbank)로 6개월간 연수 발령이 났고, 운 좋게 3년간 해외지점 근무를 더 했다. 해외로 나가겠다는 꿈을 결국 직장에서 이뤘다."


▶경력을 보니 이직을 많이 한 것 같다.
"귀국한 뒤 외환은행 광화문 지점에서 근무했는데 그 당시 보람은행이 설립을 준비 중이었다. 그쪽에 아는 선배가 있어 은행 설립하는 걸 도와주다가 회사까지 옮기게 됐다. 큰 은행에서 작은 은행으로 이직한 것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이후 보람은행이 하나은행과 합쳐졌고, 이후 서울은행 인수 업무까지 맡았다. 서울은행 직원들을 데리고 하나은행 대구본부장으로 일하게 된 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하나금융지주로 발령난 이후에는 여러 보직을 거쳐 HSBC 생명보험 대표, 하나생명 대표까지 맡았다. DGB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3~4년간 쉬었는데 마누라가 '너무 논다'며 구박(?)를 줘서 다시 취업을 생각했다. DGB금융회장 뽑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예전에 은행에서 같이 일하다 교수로 있던 지인에게 공모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원했다. 최종 면접을 끝내고 그날 오후 KTX를 타고 상경하는 중 합격전화를 받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도 '하나님 빽'이 작용한 것 같다(웃음)."


▶DGB금융지주 회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은행장과 지주 회장 등 CEO 육성 프로그램을 만든 게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국내 시중은행들의 지배 구조가 투명하지 않다. CEO선임 과정을 보면 후보자의 능력보다는 늘 학연, 지연 등 관계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차기 CEO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기업엔 사활이 걸린 일이다. 늘 뒤에 뛸 사람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손발을 맞춰가며 점진적으로 바통을 넘겨야 한다. 큰 건물을 짓기위해 벽돌 하나라도 제대로 놓아주고 가야 다음 사람이 그 위에 제대로 쌓을 수 있다. CEO가 자기 후계자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싹을 잘라야 자기 존재감이 드러나고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나은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지배구조 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임원 3년, 은행장 3년, 회장 2년에 걸친 CEO육성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조직을 제대로 이끌 경영자가 나올 것으로 확신했다. 실력, 인성, 도덕적으로 임원들을 잘 교육해야 후배들이 그 모습을 보고 따라간다. CEO 하나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살 수도 있다. 원석을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된다. 사람을 다듬는 일이 바로 교육이다. 직원에게 투자하면 절대 손해가 나지 않는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앞두고 있다.
"그룹 성장을 위해선 국내 인구의 50%, 금융자산 70% 이상이 몰려있는 수도권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디지털 서비스와 새 브랜드로 고객들의 인식 변화를 끌어 내는게 최우선이다. 또 그룹이 성장하는 만큼 지역에 대한 기여를 더 확대할 필요도 있다.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중요하다. 금융은 고객의 믿음 속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이익을 많이 내는 것만이 금융의 본질은 아니다. 수익이나 자산 규모가 얼마나 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함께 고객에게 사랑받는 은행이 돼야 한다. 덩치가 클수록 소통은 힘들어진다. 사람도 적정한 몸무게를 유지해야 활기차고, 위기상황 대처도 빨라진다. 몸집만 큰 은행을 지향해선 안된다."


▶DGB금융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후배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했다. 최근 기술 및 경영 혁신으로 직무가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AI플랫폼이 등장하고, 점포가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의 직무도 기술 환경 변화에 따라 재설정해야 한다. 자기 역량을 개발해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융사도 업무를 적절히 재배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포용 금융 확장도 필요하다. 중소 자영업자들과 영세 상공인들은 대출이 많은데 일한다고 바빠서 재무·부채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 은행에서 리스크 관리를 해주는 컨설팅 팀을 만들어 이들이 영업을 잘 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지역도 살리고 은행도 사는 '상생 경영'이 답이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좀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지금의 정년(55세)은 너무 짧다. 나가서 할일없이 지내는 모습이 안타깝다. 70세까지 일할 수 있으면 그들의 능력이 다양한 방면에서 더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퇴임 후 계획은.
"몰입의 경험을 계속 이어가려 한다. 지금까진 기업 경영에 쏠려 있었다면 앞으론 좀 더 개인적인 경험이나 목공일처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고 싶다. 새로운 경험이 또 다른 깨달음을 가져올 수 있다. 산책 같은 좋은 습관을 유지하면서 색다른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일단 이달 말 퇴임하면 서울에서 생활하려고 한다. 고객과 주주, 임직원, 지역사회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응할 준비도 돼 있다. 수도권에 인적 네트워크가 많으니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 조기 안착할 수 있도록 서울에서 영업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하면 된다."


대담=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정리=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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