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 서울 정치부장 |
2024년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의 추락이라는 매우 희귀한 정치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21대 국회는 정권이 교체되며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다. 여소야대였지만 협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난 4·10총선에서 정치권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 숙여 과반 의석 확보를 국민께 호소했다. 여당은 야당의 입법독주를 막아야 한다고, 야당은 대통령의 독선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22대 국회는 그들이 말한 것처럼 정말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더 암담한 국회가 됐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두 달이 지났건만 합의처리된 법안은 하나도 없다. 개원 이후 7월31일 현재 2천400 건의 법률안이 제출됐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은 건 5건, 0.21%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은 본회의 통과 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고, 5박6일 필리버스터를 거쳐 30일 통과된 '방송4법'도 대통령의 거부권행사가 확실시된다. 방송4법도 대통령 거부권행사가 이뤄진다면 실질적으로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되지 못한 셈이다. 민주당이 이달 초 처리할 예정인 전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도 비슷한 운명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정치의 끝없는 몰락'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이 고통을 받든 말든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할 뿐이다.
정치가 몰락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다. 널뛰듯 들썩이는 물가와 부동산 가격에 한숨만 나온다. 오늘의 내 가정이 내일까지 안정적으로까지 이어질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원들이 목청이 터져라 필리버스터를 해도 국민은 관심이 없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민생 위기의 연속이다. 특히 22대 국회의 가장 큰 특징은 협치의 실종이다. 정치의 기본인 협치가 사라진 22대 국회에 기대할 것은 없다. 여야 당 대표 회담이나 원내대표 협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 더 쉽고, 더 자극적인 입법독주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서로를 헐뜯기에만 분주하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회는 대결과 분열, 막말과 갈등으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처럼 여당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의존한다면 3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국민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야당도 입법독주를 계속하면 그 역시 민심의 냉혹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정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시대 상황과의 타협을 통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현재의 진흙탕 싸움으로 국회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치의 수혜자여야 할 국민을 위해 우리 국회는 대화와 협상의 묘미를 발휘해야 한다.
현대 정치와 사회는 하나의 문제에 다양한 원인이 복합되어 있다. 단순히 이념에 매몰됐다간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국민의 눈높이'를 늘 강조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도 한결같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두 정치인의 발언은 하나의 길로 통하고 있다. 바로 민생이다. 이들의 말이 말 장난이 아닌, 진심이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 22대 국회가 생산성 제로가 아닌, 가성비 갑의 국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임호 서울 정치부장
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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