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1)…누가 핑크를 여자의 색이라 했나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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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17  |  수정 2025-01-17 08:07  |  발행일 2025-01-17 제15면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1)…누가 핑크를 여자의 색이라 했나
18세기 로코코 시대 남성 패션의 초상화. 분홍색은 로코코 시대 패션을 더욱 달콤한 감성으로 돋보이게 했다. <출처: wikioo>
얼마 전 TV의 한 음악공연 프로그램에서 유명 가수인 지드래곤이 밝은 분홍색(pink) 슈트로 화려한 무대를 연출한 것을 보면서, 분홍색이 그 무대를 더욱 지디(GD)스럽게 독특하고 화려하게 완성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분홍색은 사회문화적 좁은 관념에서는 전형적 이미지가 있으나 주위를 둘러보면 굉장한 시각적·감성적 효과를 주는 색이다.

보수적으로 분홍색은 '여성스러운' '여자 아이' '장미' '바비인형' '캔디' 등과 같이 주로 여성과 아이 혹은 부드럽고 달콤한 대상과 연관돼 인식·사용돼 왔다.

그러나 분홍색은 디자이너, 사회운동가, 예술과 사회문화 분야에서 전통적인 규범에 도전하며 그 의미를 사랑, 포용성, 다양성, 기쁨 등으로 확장해 왔다. 그로 인해 전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분홍색은 성복뿐 아니라 스트리트웨어, 예술, 대중문화, 하위문화, 그리고 정치, 마케팅에서 주요 테마로 역할을 하고 있다.

패션의 역사에서 분홍색이 대중화된 것은 1700년대다.

분홍색은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유행한 우아하고 귀족적인 로코코 시대 패션을 더욱 달콤한 감성으로 돋보이게 했다. 이 시대에는 남성용 정장과 여성용 드레스 가운에서 모두 밝은 분홍색의 화려한 패션은 사치스러운 부와 지위를 나타냈고 가볍고 화려한 미학을 보여줬다. 여성적인 것으로 성별화되지 않았던 이 시대의 분홍색은 금사, 은사로 꽃무늬 자수로 장식됐고 부유한 세련미로 과시됐다. 부드러운 분홍색은 파스텔 계열의 다른 색상들과 함께 귀족적 로맨스와 이상적인 풍요로운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예술가들의 그림에서 표현됐다.


18C 남녀 구분없이 대중적 사랑받아
로코코시대 귀족들 화려한 패션 완성
19C 산업혁명 시기 남성다움을 강조
부드럽고 유쾌한 이미지 컬러 기피돼
낭만주의 등장하며 성별간 구분 커져

1920년대 아동복 제조·마케팅 전략
여아 핑크·남아 블루 문화적 개념변화
이후 대중문화 통해 여성성의 상징돼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1)…누가 핑크를 여자의 색이라 했나
1890년 낭만주의 시대의 분홍색 드레스. 낭만주의 등장 이후 패션도 이에 영향을 받아 부드럽고 극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출처: tatler>
이후 19세기에 성별 간의 구분이 커지면서 여성과 연관성으로 점진적으로 전환됐다. 19세기 산업혁명, 산업주의로 완전한 남성의 지위를 얻기 위해 일과 경제력은 남성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됐고 남성다움에서 부드럽고 유쾌한 이미지 분홍색은 연관되지 말아야 할 존재였을 것이다.

반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이성과 질서에 대한 계몽주의적 가치에 대해 지쳐가는 사회에서 상상력과 감정을 강조한 낭만주의가 등장했다. 패션도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부드럽고 극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 여성복에는 로맨스, 순수함, 섬세함에 대한 문화적인 이상을 반영해 부드럽고 화사한 분홍색은 그 시대 패션에 포함됐다. 또한 산업화의 부상으로 합성 염료를 통해 낮은 비용으로 분홍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어 그 색에 대한 접근성은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됐다.

20세기 초 성별과 색상에 대한 사회적 규범은 유동적으로, 분홍색은 고정적인 '여성스러운' 색상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분홍색은 소년을 위한 색으로, 이는 핑크는 '더 활동적이고 공격적인 빨간색을 모색으로 해, 음영을 낮추더라도 확고하고 강한 색으로 소년에게 더 적합하다'고 봤다. 이와 같이 20세기 초반에는 색상 선호도에서 젠더 중립의 시기였지만, 1920년대 이후 아동복 제조와 마케팅,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영향으로 분홍색은 여자 아이, 하늘색은 남자 아이라는 문화적 개념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1930~1940년대 여성 패션에서 실용성과 기능성을 강조한 코코 샤넬의 라이벌이었던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초현실주의와 같은 독특하고 예술적인 주제의 패션을 창작한 디자이너로 채도 높은 마젠타색인 쇼킹 핑크(shocking pink) 드레스와 가운을 발표했다. 그녀는 분홍색의 화려함과 강렬함에 영감을 받아 차분한 파스텔톤의 분홍색과 대조되는 대담하고 도발적 이미지의 분홍색을 선택해 생명, 권력, 열정의 상징으로 드러냈다. 이는 사회적 틀에 얽매이지 않은 예상치 못한 것을 수용하는 초현실주의적 성향과 일치했다. 스키아파렐리는 당시 일반적이지 않았던 색조의 쇼킹 핑크를 채택해 당시 패션과 여성성,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규범을 거부했고 이는 순응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쇼킹 핑크는 이후 세대의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 발렌티노 등에 영향을 미쳤다. 이 색상은 두려움 없는 도전과 창의성, 개성과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켜 패션을 초월한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1)…누가 핑크를 여자의 색이라 했나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인 1940~1950년대는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정주부로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분홍색은 '여성의 색'으로 홍보돼 부드러움, 여성, 낭만을 상징하게 됐다. 전후 경제적 활황으로 소비문화는 급속히 증가했고 성별에 따른 제품을 문화와 마케팅으로 장려하면서 분홍색은 여성적인 이미지로 강조됐고 바비 인형 패션의 대표적인 색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하듯이 1953년 개봉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는 매릴린 먼로가 선명한 분홍색 원피스와 긴 장갑으로 당시 시대가 추구하는 순수하면서 유혹적인 정체성의 여성적 매력의 이상을 보여줬다. 이와 같이 1950년대 말까지 분홍색은 대중문화 속 상징을 통해 서양 문화에서 여성성의 상징으로 깊이 자리잡게 됐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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