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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희 수석논설위원 |
내우외환이다. 안팎 모두 편한 데가 없다. 도무지 앞이 안 보인다. 요즘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이다. 내수 침체와 트럼프의 관세 폭탄 탓이다. 더 큰 난관은 경제 성장이 더뎌지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덮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이 게 서민에겐 이른바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섭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전인미답(前人未踏), 가보지 않은 길로 접어든 형국이다. 그것도 저성장이라는 최악의 길로. 경제성장률은 4분기 연속 바닥을 쳤다.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연간으로 따져봐도 성장률은 올해 1.5%, 내년 1.8%로 한국은행은 내다봤다. 1%대 저성장 흐름이 4년째 이어지는 것이다. 트럼프 스톰이 덮치기 전에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모양새다. 저성장은 쓴 약 대신 사탕을 먹은 우리의 자업자득이다. 창조적인 파괴와 혁신을 차일피일 미룬 탓이다. 기득권을 가진 이익 집단의 반발과 이들에게 영합한 정치권의 규제 영향이 크다. 앞으로가 더 가시밭길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트럼프의 관세전쟁 충격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체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으니,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스멀스멀 밀려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재성장률마저 1%대로 추락한 것은 더 아프다. 경제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음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률 자체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잠재성장률은 경제의 기본 체력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약으로도 쉽게 낫지 않는다. 첩첩산중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국가와 정파, 이념을 초월한다. 민생 문제는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부시 정권의 철옹성 같았던 아성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때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간결한 슬로건으로 걸프전 승리를 이끈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을 꺾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국민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밥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오불관언(吾不關焉)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벼랑 끝 경제를 뻔히 보면서도 당리당략을 앞세운 신경전과 주도권 다툼으로 날밤을 새운다. 정치권이 내놓는 대책이란 '아무말 대잔치'의 극치다. 민생지원금이, K엔비디아가, 알맹이 빠진 반도체 특별법이 그러하다. 정치 언어는 모호하다. 논점도 회피한다. 이익 배분형의 정치적 수사(修辭)와 다름없다. 우리 경제가 어쩌다 이런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누항(陋巷)의 민심은 흉흉하다. 현장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대구의 들안길 식당가도 밤 9시만 넘으면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민생, 경제 법안들이 정치권에 발목 잡힌 대가로 치러야 할 비용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좌충우돌하는 트럼프가 언제 우리를 덮칠지,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쉽지 않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얼마나 클지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박투(搏鬪)를 거듭하고, 정부는 숨죽인 채 승자만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러다가 트럼프 스톰과 저성장 침체국면을 헤쳐나갈 골든타임도 놓칠 수 있다. 해는 시나브로 저무는 데 갈 길은 험하고 멀다. 이럴수록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 매고 충격파에 대비해야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이다.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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