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서(春序). 봄에 꽃이 피는 순서를 이르는 말이다. 사전적인 의미의 어휘는 아니나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춘풍(春風)'에서 유래해 통용된다. 그는 춘풍에서 “봄바람이 부니 정원의 매화가 피어나고/ 앵두꽃과 살구꽃 복사꽃 오야꽃이 뒤를 이어 차례로 핀다./마을 안 깊은 곳의 묵정밭에서는 냉이꽃이 바람에 흔들리니/이 또한 나를 위해 불어오는 봄바람이 아니겠나."고 노래했다.
지구온난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전만 해도 봄꽃은 일정한 순서에 의해 피었다. 대체로 겨울 꽃인 동백이 가장 먼저 피고 매화·산수유·개나리·진달래·벚꽃·철쭉 순이었다.
피는 순서뿐만 아니라 꽃피는 간격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개나리가 피고 나서 30여일이 지난 뒤에야 벚꽃이 개화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기간이 20여 일로 줄어들었으며, 2010년대부터는 간격이 1주일 전후로 좁혀지다가 요즘에는 어떤 꽃이 먼저 필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꽃 피는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춘서가 무너진 것은 꽃의 종류에서 뿐만 아니다. 제주에서 시작, 북쪽 지방으로 올라오면서 차례로 봄꽃이 피던 '북진개화'도 옛 이야기가 됐다. 대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벚꽃이 만발하기도 한다. 개화시기도 빨라지고 시점 또한 들쭉날쭉이다. 산림청의 봄철 꽃나무 개화 예측도 불안하다.
이런 춘서의 혼란은 곤충과 조류의 생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문제다. 꽃 피는 시기와 벌·나비를 비롯한 화분매개 곤충의 활동기가 맞지 않아 공생관계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꿀벌과 나비의 실종도 춘서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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