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703년 5월16일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세상을 떠났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을 남긴 샤를 페로는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보다 160여년 전에 활동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그는 '동화'라는 새 갈래를 개척한 문학가로 명망이 높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시작과 끝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야기는 방앗간 주인인 아버지가 장남에게 방앗간을, 차남에게 당나귀를, 삼남에게 고양이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세 아들을 차별했을까? 사람의 계급을 인정한 유교 논리를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장남에 견줘 차남, 삼남 등을 홀대한 나라가 아니었다. 481년부터 843년까지 존재했던 프랑크 왕국은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 시대로 전후가 나뉘는데, 두 왕조 모두 마지막에 가면 국토를 왕자들이 공평하게 나누어서 소유한다. 국가 자체를 왕가의 재산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크 왕국은 만민법 적용을 통해 세계 보편국가를 지향했던 로마제국보다 까마득히 뒤떨어진 국가였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라를 나누어서 왕자들에게 물려준 참담한 관습 덕분에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생겨났으니 인류사로 보면 뜻밖의 효과를 얻었다고 하겠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마지막은 고양이가 지혜를 발휘해 주인인 삼남에게 큰 부귀영화를 안겨주는 것으로 끝난다. 고양이는 마왕의 변신 능력에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아첨을 한다. 마왕은 기분이 좋아져서 고양이가 코끼리로 변하라면 코끼리가 되고, 사자로 변하라면 사자가 된다.
이윽고 고양이는 마왕에게 쥐로 변해보라고 한다. 마왕은 쥐가 된다. 고양이는 잽싸게 쥐를 잡아 먹어버린다. 마왕의 성을 차지한 고양이는 나라의 임금에게 "저의 주인님이 이 성의 성주입니다"라고 말한다. 왕은 삼남을 자신의 사위로 삼는다.
'장화 신은 고양이' 종류의 서사를 흔히 동화라 한다. 즉 동화라는 용어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조선시대 평어로 '허탄(虛誕)'하기 짝이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이 많다.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비상식적 인간형들이 워낙 많은 탓에 소설도 점점 기이해지고 있다. 고양이가 꼭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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