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트럼프의 거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세상이 들썩댄다. 그게 종잡을 수 없는 흰소리라고 할지라도. 진작에 '양치기 노인'이 됐을 수도 있지만, 천조국(千兆國) 대통령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떨친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트럼프의 일방적인 관세, 제조업 재건 정책이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의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방 경제를 그로키 상태로 몰아넣는 게 바로 그렇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승자와 패자만 있는 '제로섬 게임'과 다름없다. 그의 세계관은 무역수지가 적자면 패배, 흑자면 승리라는 이분법적 시각에 기반한다. 약자는 강자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그의 어긋난 논리 탓에 세계 곳곳에서 을(乙)의 절규가 터져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 지방 산업도시들도 약자의 설움을 겪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의 관세는 마치 이란 핵시설을 때린 '벙커버스터' 폭탄처럼 치명적이다. 미국행 수출은 줄어든 반면, 기업 투자는 줄줄이 미국으로 향한다. 현대차그룹이 트럼프에게 약속한 대미 투자 210억 달러(약 31조 원)의 고용 창출 효과는 무려 50만 명을 웃돈다. 이는 포항시 규모의 도시를 미국에 빼앗긴 것과 진배없다. TK의 차 부품산업도 타격이 크다. 부품업체들 역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밖에 없다. 억지 춘양(春陽) 격이다. 포스코도 결국엔 라이벌 현대차와 손잡고 미국 진출 길에 올랐다. 이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트럼프의 '매드맨(미치광이)' 공세는 국내의 제조업 공동화를 부채질하고, 지방의 전통 산업도시를 소멸 위기로 내몬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산업 기반은 제조업이다. 국민총생산(2020년 기준)의 27%나 차지한다. 그런데 지방의 산업도시들은 극단의 위기에 몰려 있다. 특히 TK의 주력산업인 차 부품과 2차전지, 철강의 상황은 풍전등화다. 경기 침체와 중국발 저가 공세, 고금리로 역대급 불황에 허덕이던 참에 터진 '관세 벙커버스터'는 나비효과 보다는 차라리 용이 내뿜는 화염에 가깝다.
문제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시작이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경고장까지 내밀며 압박하는 '자동차 25%, 철강 50%' 품목별 관세가 확정되면 대미 수출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트럼프의 관세는 단지 무역장벽을 높인 게 아니라, 지방 생존의 마지막 순환 고리를 끊어놓는 셈이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관세의 그림자는 지방 공장의 굴뚝부터 드리운다. 차갑게 식어가는 '철의 도시' 포항은 물론, 대구와 구미, 울산 등 산업도시들이 미국의 '러스트 벨트' 전철(前轍)을 밟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관세가 사라진들 지방의 위기가 해소될 리 만무하다. 그의 폭탄이 침몰하는 배를 조금 더 빨리 가라앉게 할 뿐이다. 산업 생태계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도 균형 발전에 힘을 싣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지만, 이마저도 화려한 수사에 그칠 공산이 크다. 안타깝게도 소멸 위기의 메아리는 수도권의 탐진치(貪瞋癡)에 가로막혀 지방에서만 맴돌고 있다. TK를 비롯한 지방 도시는 '승자 독식'을 추종하는 트럼프와 수도권이라는 두 괴물과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선 처지다. 국제사회 협력 없이 미국 홀로 번영할 수 없다. 수도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디 수도권이 트럼프를 반면교사 삼아 지방과 공존의 길을 모색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수석논설위원
미국의 관세, 제조업 재건
트럼프 압박 나비효과 불러
국내 제조시설 잇단 미국행
지방 산업 도시에겐 치명적
소멸위기 가속화 우려 높아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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