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유출이 또다시 반복됐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충격'이라는 말로 사건을 감쌌다. 경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직 기간제 교사, 학부모 그리고 학교 관계자가 조직적으로 시험지를 탈취하려다 적발된 전형적인 내부자 공모 사건이다. 관련자 3명은 모두 구속, 범행에 이용된 학생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한 일탈이나 도덕적 해이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오독이다. 시험지 한 장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입시는 이미 생존의 척도가 되었고, 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탈선의 유혹 앞에 무너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오래된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험지는 여전히 종이로 출력돼 교무실, 인쇄실 등에 보관되고, 학교 보안 체계는 신뢰와 관성에 의존한다. 행정실 직원도 시험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구조는 허술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구조는 한 명의 배신자 앞에 무력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왜 시험지를 훔쳐야만 했느냐는 것이다. 부모의 과도한 교육 열망과 입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내신 경쟁은 극단화됐고, 수시는 불신받고, 정시는 불확실하다. 교육은 거래가 됐고, 윤리는 무너졌다. 문제는 학생에 대한 여론이다. '0점 처리' 이후 해당 학생을 향한 조롱과 비난은 도를 넘어섰다. 일부 언론은 성적 변화나 특정 과목 점수를 부각시키며 사실상 '마녀사냥'에 가까운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정작 구조적 문제와 어른들의 책임은 뒷전이다.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폭력에 노출된 10대 학생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상황은 더 큰 비극이다. 경북도교육청은 사건 이후 시험지 관리 매뉴얼을 손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류 몇 장 고쳐서 바뀔 일이라면 이 사건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 본질은 문화다.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윤리를 위반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 부정을 고발할 수 있는 교실 분위기, 성적 외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평가 기준이 절실하다.
이번 사건으로 진짜 '0점'은 우리 교육 시스템이다. 시험지 유출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성적 중심주의,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불공정, 그리고 무너진 교육 윤리의 복합 결과다.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시험지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 시험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의 공간이 아닌 거래의 시장이 된다. 그 전환점을 여기서 막아야 한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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