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일부 청소년은 집을 나올 수밖에 없다

  •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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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31 18:24  |  수정 2025-08-01 15:23  |  발행일 2025-08-01

위기의 가출 청소년을 위한 대구지역 돌봄시설들

비행·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쉼터찾는 청소년들

꾸준한 상담치료·자격증 공부 병행하며 회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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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청소년'은 종종 일탈과 비행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이면엔 가정폭력, 방임, 빈곤 등 '보이지 않는 위기'가 숨어 있다. 반복적으로 가출하는 청소년들 대부분은 돌아갈 곳도, 의지할 어른도 없다. 일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대구시 여자단기청소년쉼터와 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를 각각 찾아 시설별 역할을 들여다봤다. 이들의 마음속 이야기까지 엿볼 수 있었다.



31일 오전 찾은 대구 중구 대구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 출입문 옆에 입소 청소년들의 외출장소, 귀가 시간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외출현황판'이 붙어있다. 조윤화 기자

31일 오전 찾은 대구 중구 대구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 출입문 옆에 입소 청소년들의 외출장소, 귀가 시간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외출현황판'이 붙어있다. 조윤화 기자

대구 중구에 위치한 대구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의 거실 공간. 최대 15명의 여성 청소년이 머무를 수 있는 이곳에는 현재 10명이 거주 중이다. 조윤화 기자

대구 중구에 위치한 대구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의 거실 공간. 최대 15명의 여성 청소년이 머무를 수 있는 이곳에는 현재 10명이 거주 중이다. 조윤화 기자

◆ "주양육자 역할 도맡는 쉼터 선생님들"


31일 오전 대구 중구에 있는 대구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에서 A(19)양을 만났다. A양은 친족 간 성폭행 피해로 비공개 쉼터에 머물다, 랜덤 채팅 어플을 통한 성매매에 연루돼 청소년보호감호시설인 읍내정보통신학교에서 한동안 지냈다. 이후 올해 1월 이곳으로 왔다. 입소 후 지속적인 상담치료를 통해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A양은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교사에게 맡겼다. (교사가) 외출할땐 들고나가도 괜찮다고 하지만 놓고 다닌다"며 "먹고 싶은 것이나 불편한 게 있으면 선생님들이 바로 챙겨준다. 학교 졸업 후 취업해 홀로서기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간 김에 쉼터를 둘러봤다. 약 661㎡(200평) 규모의 쉼터는 상담실 2곳과 식당·사무실·입소자 생활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최대 청소년 15명이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 입소 기준은 만 9세부터 24세까지. 현재 청소년 11명이 생활 중이다.


생활공간은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었다. 거실엔 TV와 책장, 운동기구가 놓여 있었다. 거실 한쪽 벽면에 걸린 화이트보드엔 설거지 당번과 청소 구역이 손글씨로 정리돼 있었다. 욕실에는 방마다 1대씩 총 4대의 세탁기가 구비돼 있다. "자기 빨래는 스스로 한다"는 생활 원칙에 따른 것.


쉼터는 기본적으로 3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다. 최대 두 차례 연장해 최장 9개월까지 생활이 가능했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처럼 특별한 사유가 있으며 더 머무를 수 있다.


교사들은 담당 입소자들의 주양육자 역할을 도맡고 있다. 심리상담은 물론,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과 연계해 취업준비도 도와준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니 기본 예절도 함께 지도한다. 유대감이 깊에 쌓이다보니 아이들과 손편지도 자주 주고받곤한다.


대구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 최효란 팀장은 "간혹 친부모가 '내 아이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쉼터에 보내겠다고 하는 문의전화가 심심찮게 온다. 어른이 아이를 먼저 포기해선 안 된다"며 "이곳에 머무는 아이들은 현재 사회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그 도움을 기억하고, 자신도 세금을 내며 사회에 기여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목표"라고 했다.



31일 오후 방문한 대구 남구 대구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 1층 공간. 1층에는 공용 주방, 상담실, 프로그램실 등이 갖춰져 있다. 조윤화 기자

31일 오후 방문한 대구 남구 대구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 1층 공간. 1층에는 공용 주방, 상담실, 프로그램실 등이 갖춰져 있다. 조윤화 기자

◆ "중장기 쉼터 확대 필요성 절실히 느껴"


같은 날 오후 남구에 있는 대구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도 찾았다. 이 곳에서 만난 B(16)군은 지난해 6월 이곳에 입소했단다. 부모님 이혼 후 초등학교 4학년(11세)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아버지가 건설 현장 일을 하며 장기간 지방에 머무는 일이 잦아, 어릴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B군에게 폭력를 행사했다. 가정 불화가 심각해지자 B군은 학교 연계를 통해 쉼터에 입소하게 됐다. B군은 "처음엔 이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입소 축하 파티도 해주시고 팀장님과 동성로 스파크랜드에 놀러 가는 등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자연스레 적응할 수 있었다"며 "현재 쉼터에서 심리 상담 치료와 컴퓨터 자격증 프로그램 수업을 받고 있다. 혼자일 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말할 곳이 없었는데, 여기선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게 가장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대구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는 2층 주택을 개조해 지어졌다. 쉼터 1층엔 공용주방, 프로그램실, 상담실 사무실이, 2층엔 청소년이 거주공간이 있다. 최대 7명까지 머무를 수 있는데 현재 5명이 생활하고 있다. 입소기간은 3년 이내로 최대 1년 연장이 가능했다. 입소한 청소년들은 가정폭력이나 방임, 비행 등의 이유로 단기쉼터에서 지내다 보호 기간을 모두 채운 뒤 이곳으로 옮겨 온 경우가 많았다. 장기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교·경찰·구청 등과 연계해 곧바로 입소가 이뤄진다.


대구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 김재환 팀장은 "입소한 이들 중엔 본인 잘못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의 폭력이나 방임 탓에 가정이 더이상 기댈 곳이 되지 못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인 우리들에게 '가족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공간이 얼마나 절실한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고 했다.


김 팀장은 청소년 쉼터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대구시가 운영 중인 거주형 청소년 쉼터는 △일시청소년쉼터(최대 7일) △여자 단기청소년쉼터 △남자 단기청소년쉼터 △여자 중장기청소년쉼터 △남자 중장기청소년쉼터 등 총 5곳이다.


그는 "중장기 쉼터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 같은 공간이다. 입소 청소년 간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면 분리 조치를 취하고 강제 퇴소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곳 아이들 상당수가 돌아갈 가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장기 쉼터의 경우 수용 인원에 제한이 있어 더 많은 아이들을 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안정적인 보호를 위해선 쉼터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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