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숙 '꽃과 사람' 대표
12일 오전, 경북 의성군 치매안심센터 대회의실은 꽃 향기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꽃꽂이 작품과 정성스럽게 그린 꽃 그림, 섬세하게 만든 압화 액자가 전시대를 빼곡히 채웠다. 수업에 참여한 15명의 어르신들은 "이거 내가 만든 거야"라며 뿌듯하게 작품을 자랑했고, 가족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꽃을 통해 마음을 가꿔온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날 진행된 '내 마음 다시 꽃 피우다' 프로그램은 대구 달서구와 경북 영천·의성·칠곡군의 치매안심센터 및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5월부터 운영 중인 예술치유 프로그램의 한 과정이다. 이 사업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25 문화로 치유 지원사업 '마음치유, 봄처럼'의 일환으로, 경도 인지장애자와 치매 위험군,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김해숙 '꽃과 사람' 대표는 "'내 마음 다시 꽃 피우다'는 문화 예술로 어르신과 가족의 행복 회복을 목표로 이뤄진다"며 "치매 예방뿐 아니라 신체·인지능력 향상, 우울감 완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화로 인한 치매와 정신질환 문제를 무겁지 않게, 즐겁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꽃과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은 4개 지역에서 주 1회, 2시간씩 5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꽃 이름 외우기, 꽃 그림 그리기(미술치료), 꽃 노래 듣고 부르기(음악치료), 꽃꽂이·압화·보존화·가드닝 같은 원예 활동을 진행하며, 완성한 작품은 전시하여 성취감을 높인다.
"꽃은 시각·후각·촉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매체라서 뇌의 알파파를 활성화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빠르게 끌어냅니다. 알파파가 많은 사람은 긍정적이고 사회성이 높죠. 반면 베타파가 많으면 신경질적이고 분노지수가 높아집니다. 이 프로그램은 알파파 전환을 돕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실제 수업의 효과는 크다. 김 대표는 "2023년 칠곡군 경로당 75곳에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 2024년에는 구미시에서 '김해숙 박사와 함께하는 원예치료'를 성황리에 마쳤다. 수업 후 어르신들이 더 밝아지고, 대화도 늘고,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김해숙 '꽃과 사람' 대표가 '내 마음 다시 꽃 피우다' 강의를 하고 있다.
30년 넘게 결핍 청소년, 우울증·치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원예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김 대표는 앞으로도 꽃과 예술의 치유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치매나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환입니다. 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 하는 문제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긍정적인 자아상을 회복하고, 가족과 지역사회가 더 따뜻해지길 바랍니다."
수업이 끝난 뒤, 강당 한 쪽에서는 어르신들이 서로의 작품을 바라보며 칭찬을 주고받았다. 한 어르신은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꽃처럼 웃었다. '내 마음 다시 꽃 피우다'라는 프로그램 이름처럼, 어르신들의 마음속에도 봄꽃이 다시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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