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침수사고 발생 한달 만에 찾아간 노곡동. 빗물펌프장 옆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 아직 침수의 흔적이 남아있다.
지난 달 17일, 대구에 비가 내리던 날, 북구 노곡동이 침수됐다. 당시 현장에선 제진기(除塵機)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등 인재(人災) 정황이 발견됐다. 15년 전 노곡동 침수 때와 꼭 닮은 사고였다. 조사 결과, 이번 침수 역시 인재로 밝혀졌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노곡동을 찾아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를 둘러보며 향후 과제에 대해 짚어봤다.
◆마을에 남은 침수의 기억…주민들 "무서웠다"
지난 16일 오후, 폭염 속에 찾아간 대구 북구 노곡동. 마을엔 한달 전 발생한 침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침수 피해를 겪은 한 가게 앞에는 '침수로 당분간 영업을 못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침수 당일,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던 노곡동 빗물펌프장은 조용히 제 위치에 서 있었다. 15년 전 그때처럼, 또 다시 주민들을 애태우게 만든 제진기 모습도 보였다.
마을 주민들의 대화에선 여전히 '침수'가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지난 16일 오후, 침수사고 발생 한달 만에 찾은 노곡동에서 한 어르신이 "침수 당시 물이 허리까지 찼다"고 말하며, 자신의 허리를 가리키고 있다.
관문동행정복지센터 노곡분소 앞에서 만난 80대 어르신은 침수가 되던 날 자신이 보고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혼 후 평생 노곡동에서 살았다는 어르신은 "그날 마을 입구 쪽에 와 있다가 집에 가려고 막 나서는데, 물이 금세 차 올라서 깜짝 놀랐고 너무 무서웠다. 거의 어른 허리까지 물이 차서 오고 가도 못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어르신은 "그날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마을이 잠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물이 실제 잠겨 이상했다"고 말했다.
마을 입구에서 더위를 식히던 한 주민은 "큰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이 조금만 더 찼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신 그런 침수사고가 안 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대구 북구 노곡동 빗물펌프장의 제진기. 지난 달 17일, 노곡동 침수사고 당시 제진기가 정상 작동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
◆15년 만의 인재가 우리에게 남긴 것
15년 만에 되풀이된 인재는 지역사회에 많은 고민거리와 과제를 남겼다. 비단 노곡동뿐만이 아니라, 대구지역 곳곳을 인재로부터 안전지대로 만들기 위해선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수사고 후 대구시를 비롯해 관계기관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 분석을 통해 노곡동 방재시스템 개선 방안 및 장·단기 단계별 재난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노곡동 배수시설에 대한 관리운영체계 일원화 작업도 본격화됐다.
침수 당시, 제진기가 멈춘 것을 목격한 주민 김용태씨는 "이번 사고는 배수시설을 설치한다고 끝난게 아니라, 운영·관리도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15년 전 '노곡동 침수피해 조사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지역 한 인사는 "과거 그 난리(노곡동 침수)를 겪은지 10년이 훌쩍 지났으니 그간 좀 안일해진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이번 사고도 사전에 시스템 점검, 상호 소통이 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앞으로는 노곡동이 침수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도록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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