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자 소설가
나는 살면서 착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친구와 방과 후 돌봄 교실인 공부방을 운영한 적이 있다. 초·중·고등학생이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몇이 비용을 갹출해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먹이고 전기세도 냈다. 일 년 좀 지나 보조금을 받아도 운영비는 부족했고, 우리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태주었다.
그때 주변에서는 "난 후원금은 못 낸다. 대신 이건 할게"라는 사람이나 "요즘 형편이 어려워. 미안"이라며 부끄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보며 알게 됐다. 후원금을 내건 내지 않건 주변인인 우리가 그런 센터를 운영한다는 게 사람들을 압박하는구나 하고. 그게 부담이 되자 내가 이 일을 한다는 것을 숨기게 됐다. 일부러 비밀로 한다기보다는 앞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도 생겼다. 내가 하는 일을 아는데도 한 달에 1만원을 후원 안 하는 사람에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참 교만했지만 그때는 나만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좀 지나 차분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을 둘러보게 됐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중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연구실에서 '실험용'으로 엄청 시달려 만신창이가 된 개를 데려와 정성껏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을 대상으로 덕질을 하는 사진작가도 있었는데, 그녀는 '실력이 있지만 아직 뜨지 못한' 가수에게 아침마다 추천과 좋아요를 누른다고 했다. 가수가 자기 취향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자신이 추천하던 가수가 인기 궤도에 오르면 미련 없이, 다른 가수에게로 마음길을 돌렸다.
이런 일과 반대되는 상황도 있었다. 한 여자는 자기 딸이 서울대를 갔기에 딸이 읽던 책을 우리 공부방에 후원하겠다면서 우쭐했다. 뭐 어쨌건 착한 마음을 낸 것이기에 고맙다고 말했다. 여자는 나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소모임 멤버 중 한 명이었는데 그 말을 세 번이나, 그러니까 석 달이나 반복하면서도 실제로 책을 공부방에 갖다주지는 않았다. 넉 달째에 나는 그만 말하라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되돌아보면 그건 분명 교만한 마음이었다.
가끔 보는 스님이나 목사 사모는 우리가 보시와 베풂의 장을 만든 것 자체에 의미를 두라고 충고했다. 후원을 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으로 범위를 축소하라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장소에서 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때는 나와 다른 방향에 그가 있었을 뿐임을, 지금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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