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김소라, 폐허 속 회화의 가능성

  •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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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9 06:00  |  발행일 2025-08-18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낡고 벗겨진 벽. 햇빛과 비에 바래진 얼룩, 오래된 먼지가 스며든 표면. 그것의 허름한 느낌을 극대화하는 거친 질감의 터치는 캔버스 화면 가득찬 형태를 추상의 느낌마저도 들게 한다. 유화 물감의 맛을 제대로 살린, 질감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들은 작가 김소라(@kkk_0516)의 것이다. 형태와 질감 사이에서 시선은 계속 흔들리고, 그 불안정성 속에서 회화가 가진 육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질감이 존재한다. 잘 도장된 새하얀 페인트 벽에서는 완벽히 매끈하고자 시도했으나 약간의 요철이 더해진 반듯함이, 유리창에는 반짝이는 차가운 미끈함이. 그러나 김소라의 작품이 포착하는 것은 완벽을 향했던 그 표면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순간이다. 벗겨진 페인트의 껍질, 무수히 붙였다 떼어진 전단지가 남긴 끈적한 흔적. 그것들은 더 이상 기능적인 표면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퇴적된 피부와도 같다. 관객은 나이든 표면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풍경의 기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혹은 다른 감각을 호출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인가? 김소라의 회화 속 표면이 불러일으키는 감상은 질문이자, 해체된 이미지로부터 불쑥 솟아나는 회화적 가능성이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 드러내고 싶은 얼굴이 아닌 숨겨진 얼굴. 마주하기보다 외면해온 세계. 작가의 회화가 이런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잉여와 폐허 속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일까? 변두리는 현실 속 공간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공간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그저 풍경을 그리는 것일까, 혹은 변두리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그리는 것일까?


김소라의 회화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표면이 가진 질감을 구축해 내는 것임에 주목해 보자면, 작가의 표면이란 기억의 단면일까, 시간의 흔적일까, 혹은 회화가 끝없이 변주해 내는 실험의 장일까? 김소라의 작업은 풍경의 기록에서 시작해 사물의 표면을 거쳐 회화적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그것이 담은 많은 의미들 사이에서 나는 수많은 물음을 떠올린다. 도시는 무엇이고, 변두리는 무엇인가. 표면은 무엇을 드러내며 무엇을 숨기는가. 회화는 그 질문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작가의 회화는 우리에게 답을 전해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물음을 건네고, 그 물음 속에서 회화는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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