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대구 도원동 수밭골 월광수변공원] 여름이면 화려한 음악분수에 400년된 느티나무 숲 ‘더위가 싹~’

  • 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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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1 19:39  |  발행일 2025-08-21
도원지 동편에 설치되어 있는 수상 데크 산책로. 도원지 서편을 감싸고 흐르는 삼필봉 능선이 늠름하다.

도원지 동편에 설치되어 있는 수상 데크 산책로. 도원지 서편을 감싸고 흐르는 삼필봉 능선이 늠름하다.

356번 버스 두 대가 번호를 반짝이며 정차해있다. 버스정류장에는 두어 사람이 서거나 앉은 채 느긋하게 출발을 기다린다. 공원 주차장에는 차가 가득하다. 들고 나는 차들도 제법 많은데 공원 산책로에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쿨링포그가 빛 쨍한 수변 광장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나무 아래 큰 그늘에는 공공근로자들의 달콤한 점심 휴식이 흩어져 있다. 거의 폭력적인 햇살에도 그들의 휴식에는 어딘가 동적이고 명랑한 기운이 있다. '수밭골 음식거리'라는 커다란 안내판을 본다. 길이 좀 변한 듯 하고, 할매묵집이 아직도 있네. 수변공원을 등지고 먼저 수밭골천 따라 마을 안쪽으로 향한다.


400년 된 당산나무. 지금도 정월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 제사가 행해진다.

400년 된 당산나무. 지금도 정월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 제사가 행해진다.

◆ 도원동 수밭골


도원동은 골짜기가 깊고 경치가 좋아 무릉도원 같다고 생긴 이름이다. 수밭골은 도원동의 자연마을로 비슬산 북쪽 지맥인 청룡산과 삼필봉 사이 남북으로 길쭉한 골짜기에 자리해 있다. 500여 년 전 박씨 선비가 처음 땅을 일궜는데, 주변의 울창한 숲을 보고 추전(萩田)이라한 것이 '숲밭'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수밭'이 되었다고 한다. 골짜기 한가운데를 흐르는 계곡물이 수밭골천이다. 도원천이라고도 부른다. 이 물길을 거슬러 계속 오르면 수밭골 고개에 닿고, 그 오른쪽은 삼필봉으로, 그 왼쪽은 청룡산으로 이어진다. 수밭골천에는 2015년부터 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가 출현했는데 2019년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물길 따라 이어지던 좁은 길이 넓게 느껴진다. 길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담장과 마을 안쪽에 즐비했던 돌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재 6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음식점과 카페 등 서른 곳 정도가 성업 중이다. 가게들이 높직하다. 휘 둘러보면 산에 갇힌 듯, 안긴 듯 했는데 지금은 건물 옥상 모서리에 먼저 시선이 닿는다.


저기에 느티나무가 있다. 건물들의 번식이 뚝 멈춰선 자리에 400년 된 거대한 느티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허리에 띠를 두른 이들은 당산나무다. 지금도 정월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 제사가 행해진다. 주민들은 매년 봄 느티나무 잎을 보며 한 해 농사를 점친다. 나무 전체에 잎이 동시에 나오면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라고 한다. 당산 숲 그늘에 한 가족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평상에는 잠든 사람이 늘어져 있다. 무성한 느티나무 이파리들이 별빛마저 지워버린 1990년대 초 어느 여름밤, 사위를 둘러싼 풀벌레소리보다 조그맣게 기타를 치던 소년이 기억난다. 청년인지, 여인인지, 아저씨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그는 그저 소년이었고, 느티나무는 언제나, 언제나 마음 좋은 신선 같다.


월광수변공원은 1964년 준공되어 농업용수를 공급했던 도원지 주변에 199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공원이다. 2017년부터는 무료 결혼식장으로도 개방 운영되고 있다.

월광수변공원은 1964년 준공되어 농업용수를 공급했던 도원지 주변에 199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공원이다. 2017년부터는 무료 결혼식장으로도 개방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월광수변공원.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월광수변공원.

◆ 도원지 월광수변공원


수밭골 골짜기를 가로질러 해발 고도 100m 정도에 조성되어 있는 저수지가 도원지다. 1957년 9월 24일 착공, 1964년 12월 31일 준공되어 상인, 진천, 월배 지역의 넓은 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던 큰 저수지다. 수밭못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수박못이라 쉬이 불렀다. 우리제 또는 우리못이라 아껴 부르는 이들도 있고 청룡이 승천했다고 청룡못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용도를 다한 저수지 주변에 월광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무성한 숲과 산책로, 다목적운동장, 체력단련시설, 어린이놀이터, 게이트볼장, 인라인 스케이트장, 휴식시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공원은 1995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고, 2000년이 지나서는 휑한 대지에 솜털처럼 식재된 수목들 사이로 가끔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2017년에는 웨딩테마공원으로 다시 꾸며 져 지금도 무료 결혼식장으로 개방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봄이 면 만개한 벚꽃과 복사꽃, 산수유, 개나리를 보러 오는 상춘객들로 붐빈다. 여름에는 도원지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음악분수 쇼를 볼 수 있고, 가을에는 온갖 빛으로 물든 수목들이 수채화로 펼쳐진다. 때로 '월광'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을까 이상스러웠는데, 대덕산과 청룡산 골 깊은 계곡에 달 비친 모습을 보고 지은 달비(달배)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물의 경계를 따라가는 데크길 너머에는 머지않아 수밭공원이 될 텃밭들이 펼쳐져 있고 정면의 아파트단지는 옛날 도원동의 자연마을인 원덕과 못밑(淵下)이었다.

물의 경계를 따라가는 데크길 너머에는 머지않아 수밭공원이 될 텃밭들이 펼쳐져 있고 정면의 아파트단지는 옛날 도원동의 자연마을인 원덕과 못밑(淵下)이었다.

어린이놀이터 주변은 보다 빼곡한 숲이다. 숲 속에 월배 유래비, 전상렬 시비, 이설주 시비, 시계탑과 박태준 흉상, 이기릉 기념비 등이 있고 넉넉한 너비의 그늘진 산책길이 이리저리 나 있다. 숲길의 북쪽 끝자락에서 도원지를 향해 잎맥처럼 난 오솔길을 빠져나가면 수상 데크 산책로가 시작된다. 물의 경계를 따라가는 데크길 너머 텃밭들이 보인다. 오래된 상수리나무와 수양버드나무는 가슴 아리게 초연하다. 저 텃밭들은 머지않아 수밭공원으로 바뀔 예정이라 한다. 80년대 중 후반 즈음 이곳에 온 적이 있다. 토막나무와 철사로 만든 썰매를 둘러매고 호기롭게 멀고먼 원정을 왔건만 골짜기 못의 겨울 어둠은 훨씬 빨랐다. 빛이라고는 별빛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숲속산책로 1.2㎞와 도원지 수변산책로 1.6㎞를 합한 2.8㎞의 길을 순환산책로라 한다.월광소원달과 출렁다리를 지나면 수밭골 입구로 내려서게 된다.

숲속산책로 1.2㎞와 도원지 수변산책로 1.6㎞를 합한 2.8㎞의 길을 순환산책로라 한다.월광소원달과 출렁다리를 지나면 수밭골 입구로 내려서게 된다.

숲속 산책로에서 도원지 저편의 보훈병원이 보인다. 병원 뒤산이 청룡산,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앞산 정상이다.

숲속 산책로에서 도원지 저편의 보훈병원이 보인다. 병원 뒤산이 청룡산,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앞산 정상이다.

◆ 도원지 순환 산책로


데크 길 끝에서 뭍으로 오르면 어미수달과 아기수달 돌 조형물이 몇 그루 멋진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2020년 도원지에 아기 수달이 나타났다고 한다. 지금 도원지 가운데 있는 콩 만 한 섬이 수달 쉼터다. 달서구는 수밭골에서 대명유수지를 거쳐 달성습지까지 연결하는 도시생태 축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달과 반딧불이 서식지 복원이 사업에 속해 있다. 아치형 목재 다리를 건너 도원지 둑길에 오른다. 다리아래 수구 주변으로 농어촌공사에서 나온 사나이들이 풀을 정리하고 있다. 둑길 아래 아파트 단지 사이 숲에는 한 아저씨가 어린 나무들을 돌보는 중이다. 아마 편백나무일 듯하다. 달서구는 지난해까지 8년간 2만 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었는데 도원지 주변에 2천500여 그루가 식재되었다고 한다. 훨씬 옛날 둑 아래는 도원동의 자연마을인 원덕과 못밑(淵下)이었다. 달서구는 지금 바쁘고 도원지 일대는 계속 변화할게다.


둑길 끝에서 삼필봉 자락으로 든다. 능선을 따라 삼필산 봉우리들을 밟고 수밭골 고개 거쳐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고, 2022년 초에 개통한 나무 데크형 숲속산책로가 있다. 산 중턱을 오르내리는 숲속산책로 1.2㎞와 도원지 수변산책로 1.6㎞를 합한 2.8㎞의 길을 순환산책로라 한다. 골짜기에 쏟아지는 맹렬한 햇살만큼 숲길의 그늘이 짙다. 천천히 그러나 가슴 가쁘게 오르내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도원지 저편의 보훈병원이 보인다. 1992년에 개원했으니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흘렀다. 병원 꼭대기에서 직선으로 산을 오르면 청룡산 청룡굴이 있다. 해발 몇 미터 즈음일까. 지도를 띄워놓고 등고선을 세다 에잇 하고 그만둔다. 수밭골천의 물이 청룡굴을 거쳐 흐른단다. 달비골 황룡과 수밭골 청룡이 청룡굴에 함께 있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전설도 있다. 커다랗고 하얀 '월광소원달'과 출렁다리를 지나면 다시 수밭골 입구다. 2000년에 완공된 월광교와 2016년에 완공된 수밭교가 나란히 수밭골천 위에 누워 있다. 수밭교에서 저기 느티나무를 본다. 공원에 있는 전상렬 시비가 떠오른다. '강 따라 물이 흐르고/ 물 따라 강이 흐른다/ 물 흐르듯 흐르는 세월 기슭에/ 저만치 고목이 서 있고/ 바람 따라 세월이 가고.'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지하철1호선과 연결되는 5번 국도를 따라 상인, 옥포, 달성 방향으로 간다. 진천역 지나 유천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월곡네거리에서 우회전해 도로 끝까지 가면 된다. 수밭골과 월광수변공원을 합해 넉넉한 공영주차장이 5개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1호선 상인역에서 내리면 된다. 1번 출구로 나와 (영남고등학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356번 시내버스를 타고 월광수변공원에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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