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9월에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우리 대학은 8월 마지막주에 개강준비 행사들이 시작된다. 학과와 단과대 교수 및 직원 회의가 각각 하루종일 열렸고 업무 이메일들이 쏟아지는 한주를 보냈다. 새로 고용된 교수동료들이 처음 참석하는 이 행사들은 만남의 시간이기도 하다.
갓 학위를 받고 이웃 주에서 온 백인 동료는 정제된 직업적 인사 끝에 집이 그립다(feeling homesick)며 눈물을 보였다. 휴식시간, 그녀를 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남편 직장 때문에 키우던 개만 데리고 왔고 몇 년간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이사 후 2주간 정착과정을 도와준 남편이 돌아간 후 1주일쯤 혼자 지냈는데 얘기할 사람도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다고 했다. 이번 주말에 집에 가는데도 그렇다고. 그럴 수 있어, 라고 해줬다. 애 키우는 가족들 중심인 이 도시가 대도시들처럼 혼자 나가서 할 일이 많은 곳도 아니고 1인가구들에게는 더 힘들지. 너가 살던 도시와도 다를 걸. 나도 처음 왔을 때 정말 힘들었어. 게다가 너도 교수생활은 처음이잖아. 그 땐 나도 잘 몰랐는데 새로운 직업과 직장에 적응하는 게 엄청 큰 일이더라고. 그녀가 말했다, 마흔에 가까운 이 나이에 대학 신입생이 된 기분이라고. 혼자 사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학생 때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살았고 늘 가족들과 같이 지냈다고. 그렇구나, 혼자 처음 살아본다는 거 엄청 큰 적응이 필요한 일이야. 일 잘하려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첫 학기는 너 자신에게 필요했던 휴식도 허용하고 삶의 전환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주면 어때? 그래도 넌 비행기타면 한시간 거리니까 집에 자주 가면 되잖아. 주말에 가서 푹 쉬다 와.
몇 년전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렇게 말했겠지. 그렇지? 너도 그런데 난 어땠겠니? 난 더 힘들었어. 도와줄 남편도 부모도 없고, 외국인에 직장도 도시 문화도 내가 살아본 어디와도 너무 다르고, 집은 한국이라 먼데 직항노선 없는 곳도 처음이라 더 멀게 느껴지고 세상에 나 혼자 같았어. 지난 10년간 가져온 치열한 내적 성장의 시간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내가 뭔가 잘못되어서 그 시간이 그렇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란 자각, '네 잘못이 아니야'란 흔한 치유의 언어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타인의 고통을 '투사'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게 되었구나. 기특하네.
삶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왜 나만, 내 운명만 이럴까란 생각이다. 왜 내 가족만, 내 직장만 이럴까 싶지만, 가족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진 여인에게 부처님이 마을에서 가족 중 아무도 죽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한줌 얻어오라 했더니 그 여인이 결국 그런 집을 찾지 못하고 꺠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처럼, 나의 문제는 때로 삶의 보편성에 기대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겉모양은 달라도 알고 보면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안다면 내 삶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사회나 국가 차원의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지인들과 얘기하다보면 많은 걸 '한국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정치, 교육, 청년 실업, 주택 문제, 시댁 포함 가족과의 갈등, 이해하기 힘든 '요즘 아이들' 등 많은 문제는 이 곳 사람들도 겪고 있고, 그 보편성에 비추어 한국만의 특수성을 들여다보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이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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