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窓]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는 C이다

  •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 |
  • 입력 2025-09-12 06:00  |  발행일 2025-09-11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샤르트르가 알파벳 순서를 이용해 현학적으로 표현한 문구로 "인생이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콜라냐 사이다냐'와 같은 매우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어느 대학·어느 과에 진학할 것인가와 같은 중차대한 결정까지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잘못된 의료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저항해왔던 학생과 전공의들은 얼마 전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가 그토록 소망하였던 의학 공부와 수련을 이어나가기로 선택하였다. 약 1년 반 동안 각자의 꿈과 희망은 잠시 접어두고 올바른 보건정책 수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어쩌면 이전보다 의료상황은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일 보건복지부는 2025년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체 전공의 규모는 예년 대비 76.2% 수준을 회복하여 상당수 사직 전공의가 수련 현장에 복귀함에 따라 의료체계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한다.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필요성도 다시 한번 확인된 만큼 관련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란 이런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 아닐까? 통계상으로는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약 8천여 명이 선발된 것은 맞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보도 참고자료에 첨부된 세부 결과표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진다.


우선 의료대란 전에는 거의 100%였던 인턴 선발인원이 52%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 전문의가 되기 위해 전공의를 지원할 수 있는 의사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수과 전문의 배출이 줄어들 것은 당연하고, 대학병원에서의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의료공백은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방에서의 인력 부족이 예전보다 점점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필수의료인 내과(75.8%(수도권)/48.5%(비수도권)), 산부인과(58.3%/27.6%), 소아청소년과(16.6%/8.0%), 심장혈관흉부외과(32.8%/4.9%), 외과(44.7%/23.4%)의 수도권 대비 비수도권 전공의 선발 인원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이다. 과연 이러한 결과가 의사의 숫자가 부족해서 나오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인기과로 알려진 '피안성'을 살펴보자. 피부과(88.8%/91.7%), 안과(92.4%/91.2%), 성형외과(93.2%/83.5%)를 보면 오히려 비수도권에서 선발 비율이 더 높은 곳도 있다. 어떻게 비수도권에서 인기가 더 많을 수가 있지? 아니 왜? 지방으로 가려는 의사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의료붕괴는 의사 '수'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젊은 의사들의 '선택'의 부족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정부와 여당은 속칭 '지역의사법'을 이번 달 정기국회 내 처리할 것이라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공공의대 설립 등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정책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모되며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10여 년 전 일본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의료체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 젊은 의사들이 안심하고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밑받침해 주어야 한다. 정부의 올바른 '선택'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