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먹볼즐 - 발상의 전환이 만든 우리 도시의 매력

  •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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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30 06:00  |  발행일 2025-09-28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전창록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사람들이 이 방에 들어오면, 걸음부터 달라집니다. 목소리가 낮아지고, 호흡이 느려집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사유의 방'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관람객이 반가사유상 앞에서 고요히 머무는 순간, 단순한 '보는 사람'을 넘어 체험의 주체가 된다. 이 경험은 '반가사유상 멍'이라는 신조어를 낳았고, '사유의 방'은 개관 이후 올 7월까지 341만 명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5대 박물관을 넘보는 위상까지 얻게 되었다.


사람은 왜 어떤 도시는 머무르고, 어떤 도시는 스쳐 지나갈까? 그 차이는 도시가 제공하는 먹거리·볼거리·즐길거리, 이 세 가지의 질과 깊이에 달려 있다. 그래서 지역마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높게는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양을 늘린다고 운명을 바꾸진 못한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이 공간과 시간을 허물어, 이제 지방은 옆 도시가 아니라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같은 먹·볼·즐이라도 어떻게 새롭게 풀어내느냐가 도시의 운명을 좌우한다.


먼저 먹거리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산세바스티안은 작은 해안 도시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미식의 성지다. 1970년대 젊은 셰프들이 프랑스에서 배운 현대 요리법을 바스크 전통 음식에 접목해 '바스크 신요리' 운동을 펼친 덕분이다. 그 결과 도시 전체가 미식의 무대가 되었고, 지금은 미슐랭 선정 레스토랑 약 12곳을 갖춘 도시로 성장했다. 인구 대비 압도적으로 많은 미슐랭 레스토랑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했을 때 먹거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도시를 찾게 하는 이유가 된다.


둘째는 볼거리다. 이제 풍경과 유적만으로는 발걸음을 오래 붙잡기 어렵다. 얼마 전 끝난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예술 특별전의 '와카+RFID' 전시는 좋은 사례다. 관람객이 태그를 올리면 짧은 시와 해설이 빛과 함께 나타나며, 작품은 순간의 감정과 연결된다. 실험 결과 관람 시간은 두 배 이상 늘었고, 많은 이들이 "작품 이해가 깊어졌다"라고 답했다. 디지털 기술이 결합할 때 볼거리는 정적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셋째는 즐길거리다. 반가사유상은 그전에도 국립 중앙박물관에 존재했지만, 공간적으로 기승전결의 맥락을 만들고 '사유의 방'이라는 브랜딩을 한 순간, 관람이라는 행위가 체험이라는 경험으로 승화된 것이다. 즐길거리는 이렇게 공간에 기승전결의 흐름과 브랜딩을 더할 때 기억되는 경험이 된다.


브라질 꾸리찌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전 시장은 전시장을 지을 때 담당 부서가 제시한 예산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좋아, 예산에서 0 하나를 빼라." 불가능해 보였지만, 발상의 전환 끝에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꾸리찌바는 대규모 투자가 아닌 창의적 해법으로 세계적 도시 혁신 사례가 되었고,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도시 매력은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된다는 결론 말이다. 먹거리는 전통을 새롭게 해석할 때 세계로 열리고, 볼거리는 예술에 디지털을 입힐 때 세대의 경계를 넘는다. 즐길거리는 공간에 맥락과 브랜딩을 더할 때 경험으로 승화된다. 도시를 유일무이하게 만드는 힘은 '얼마나 많이 갖추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게 풀어냈는가'에 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예산이 아니라 더 큰 창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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