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고공농성 600일, 땅 밟은 박정혜 부지회장··· 본격적인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

  •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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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12 23:46  |  수정 2025-10-12 23:53  |  발행일 2025-10-12
“600일을 함께했던 연대와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만 기억됐으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 공장 화재 후 공장 폐업, 화재 보험금 총 647억원 수령할 듯
외투기업 횡포로 고통당하지 않아야. 먹튀방지법이 그 시작

1970년 11월13일 대구 출신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고통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산화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로부터 55년이 흐르는 동안 역대 정부는 노동자 인권 보호와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섰지만, 지금도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영남일보는 시대는 달리하지만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삶을 지탱해 나가는 '2025년판 전태일'을 찾아 그 실태와 함께 법·제도적 문제점을 짚어 본다.



600일간의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으로 내려온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부지회장이 회사 동료들과 포옹하고 있다. <박용기 기자>

600일간의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으로 내려온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부지회장이 회사 동료들과 포옹하고 있다. <박용기 기자>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부지회장이 올해 여름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 온도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텐트 안 온도는 39℃이지만 옥상 바닥 온도는 50℃가 넘는다. <박정혜씨 제공>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부지회장이 올해 여름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 온도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텐트 안 온도는 39℃이지만 옥상 바닥 온도는 50℃가 넘는다. <박정혜씨 제공>

이지영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과 남은 해고노동자들이 600일간의 고공농성 후 땅으로 내려온 박정혜 부지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뒤로 박 부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한 옥상이 보인다. <박용기 기자>

이지영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과 남은 해고노동자들이 600일간의 고공농성 후 땅으로 내려온 박정혜 부지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뒤로 박 부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한 옥상이 보인다. <박용기 기자>

"600일이라는 시간도 저도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채웠던 연대와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들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북 구미에 있는 불탄 회사 공장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외치며 세계 최장 600일 고공농성을 한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2년 가까운 고공농성으로 아직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박 부지회장의 몸 상황을 고려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박 부지회장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같은 외국인 투자기업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라는 것"이라며 "저와 동료들은 이 사업장에서 10년 넘게 매일 12시간 맞교대를 하면서 20대부터 40대까지 청춘을 바쳤다. 그런데 회사는 불이 나자 한 달 만에 문자로 청산을 통보하고 내쫓았다"고 했다. 이어 "공장 재건에 맞먹는 화재보험금도 회사는 다 챙겼다. 넘쳐나던 일감은 평택에 있는 한국니토옵티칼로 모두 빼돌렸다"며 "계획된 위장폐업으로 우리의 고용승계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필름을 생산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22년 10월 구미 공장 화재 발생 후 공장 복구 대신 노동자들을 희망퇴직 및 정리해고했다. 현재 박 부회장 포함 7명이 남아 한국니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니토옵티칼과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모두 일본 기업 니토덴코의 자회사로 니토옵티칼은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주영(김포시갑)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화재보험금 총 647억원(재물담보 405억, 기업휴지위험 담보 122억, 적하보험 120억)을 수령한다. 기업휴지위험 담보는 수령 전으로 회사가 보험회사에 청구서류만 제출하면 지급이 개시된다. 또 김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확보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화재현장 조사서'에는 '예상되는 사항 및 조치사항' 중 '화재보험이 가입돼 있어 피해복구에 어려움은 없어 보임'이라고 기재됐다. 화재 보험금으로 충분히 공장 복구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경영 유지 어려움이라는 청산 이유와 달리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2022년 총 124명을 신규채용했고 쌍둥이 자회사인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 역시 화재 발생 이후에도 꾸준히 신규채용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는 폐업을 결정했고 고용승계마저 나몰라라 하고 있다.


박 부지회장은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3년째 대화를 거부하는 회사의 태도도 여전하다"며 "우리는 결코 투쟁을 포기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먹튀방지법 제정과 함께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일본기업인 니토덴코에 맞서는 일본 현지 연대 동지들의 투쟁도 확대되고 있다"며 "남은 7명의 조합원들은 끝까지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힘들게 버틴 고공농성 기간도 돌아봤다. 그는 "제일 힘들었던 것이 날씨였다. 더위는 말할 것도 없었고 텐트도 비에 한번 무너지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자신을 응원해주고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도 전했다. 박 부지회장은 "저도 이 일을 겪기 전까지 세상에 무관심했다. 내 일이 되어서야 절실했다"며 "제가 고공에 있을 동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심지어 국적도 다른 분들이 저의 아픔에 공감하고 힘이 되어주었다. 공감과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편지·음식·응원·등 평생 살면서 받지 못할 동지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버텼다. 정말 600일 동안 연대동지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곁에서 같이 울고, 같이 웃어주는 사람이 있는 한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다. 고 지부장은 세종호텔 앞 10m 높이의 구조물에 올라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243일(13일 기준)째 고공농성 중이다. 600일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으로 내려와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도 고 지부장 걱정을 한 박 부지회장은 지난달 초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고 지부장의 고공농성 현장으로 달려갔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박 부지회장은 옥상에서 내려온 후에도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려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자기 방 침대에 눕는 거였지만. 막상 누우니 편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서인 것 같았다. 현재 건강검진과 함께 심리상담도 받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그리고 우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올라갔다.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거기에 공장 철거까지 한다고 하니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쫓겨날 것 같아서 공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앞으로 저처럼 또 다른 노동자가 외국인 투자기업의 횡포로 고통을 당하는 일만큼은 막고 싶다. 먹튀방지법을 만드는 게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박정혜 부지회장의 본격적인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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