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대구경북)는 오랫동안 '보수의 심장'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이제 선거역학 구도와 영남패권주의를 의미할 뿐이다. 보수의 이름은 남았지만 내용은 텅 비었고, TK는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다. 과연 보수란 무엇이어야 하며, TK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시대적 문제의식과 질문 앞에 TK가 낳은 두 인물을 소환한다. 바로 박정희와 류성룡. 한 사람은 나라를 가난으로부터 구한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나라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인물이다. 박정희의 '새마을정신'은 국가자본을 형성하며 선진국 도약이란 비전을 열었고, 류성룡의 '징비정신'은 유비무환의 지혜와 교훈, 그리고 국가적 위기에서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세를 후대에 남겼다.
보수 몰락의 원인 중 하나로 정치철학의 부재가 꼽히는 지금, 영남일보는 한국형 보수철학을 찾는 시발점으로 박정희와 류성룡의 융합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편집자주>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9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보수정치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권력의 위기를 제도와 절차로 해결하기보다 비상 명령으로 돌파하려 한 최고 권력자의 선택은 보수가 자랑해 온 '법치' '책임' '절제'라는 보수의 가치를 훼손했다. 그 결과 보수진영은 '지도부 공백→정치의 외주화→극우의 촉발'이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집권세력인 국민의힘은 반헌법적 비상계엄에 민주적 가치로 맞서지 못한 채 정치공학적으로 대응하며, 강성 지지층인 종교세력과 유사 언론(유튜브)에 의지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정치-종교-유튜브라는 한국판 '철의 삼각(Iron Triangle)'이 형성됐다는 것이 영남일보의 진단이다.
◆철의 삼각과 보수정치의 극우화
철의 삼각은 미국 정치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의회-관료-이익집단(군수업체)'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강고한 유착 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의회는 예산을 배정하고, 관료는 정책을 집행하며, 이익집단은 정치자금과 고용을 제공한다. 이 삼각 구조는 외부 견제 없이 작동하며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진다. 개혁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그래서 '철(Iron)'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 개념을 한국 상황에 적용하면, 과거에는 '정치-관료-재벌'의 유착 구조가 지목됐다. 개발독재와 성장 동맹이 빚어낸 한국판 철의 삼각이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2025년 4월 탄핵·파면 국면에서 드러난 것은 또 다른 철의 삼각이다. 제도권 보수가 헌정 위기에 민주적 가치를 세우지 못한 사이,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종교집단과 유튜브였다.
국민의힘은 지도부 공백 속에서 의제를 주도하지 못하며 정당으로서의 순기능을 상실했고, 그 틈을 전광훈·손현보의 개신교와 한학자의 통일교 네트워크가 비집고 들어가 조직과 집회 인력 등을 제공하며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다 전한길·신혜식(신의한수) 등 보수 유튜버들이 실시간 방송으로 여론을 선동하며 오프라인 집회를 주도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검에 따르면 권 의원은 2022년 1월 서울 여의도 중식당에서 통일교 측과 접촉했다. 통일교 측은 권 의원에게 현금 1억원과 함께 '통일교 신도들의 조직적인 투표' 등을 통해 대선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수사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정치-종교-유튜브의 한국판 '극우 철의 삼각'이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및 탄핵 사태 이후 국민의힘이 길을 잃자 종교인과 유튜버가 보수정치 전면에 나서는 비정상적 결과가 초래됐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위) 목사와 한국사 강사 출신의 유튜버 전한길씨. 연합뉴스.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언행은 이 같은 우려에 힘을 싣는다. 장 대표는 탄핵 이후 그리고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극우 성향 종교·유튜브와의 밀월 관계를 자랑했다. 장 대표는 탄핵 가결 이후 기독교 단체가 주관하는 '세이브코리아 반탄(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고쳐 주실 것"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전쟁(탄핵 정국)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며 종교색 짙은 발언을 했다.
대선 패배 후 진행된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는 당론을 어긴 찬탄(탄핵 찬성)파에 대한 선명한 비판으로 강성 당원들을 결집시켰다. 탄핵 과정에서 반탄 여론을 주도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전한길씨와의 밀월 관계도 당 대표 선출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2016~2017년) 당시 등장했던 일부 극우 개신교 단체와 유튜브 채널이 제도권으로 완전히 들어온 셈이다.
유튜버들은 이제 더 나아가 공천권마저 간섭하며 정치 개입을 더욱 노골화하는 모습이다. 최근 유튜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보수 성향 인사들이 내년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강경 보수 성향 인사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두고 지난달 전당대회 국면에서 장동혁 당시 당 대표 후보와 가까운 모습을 보인 이들이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혼란한 시대 등불이 돼야 할 정치가 '사명'을 잃고 표류하는 양상이다.
◆정당의 사명과 보수 재건의 길을 묻다
사명엔 비전과 철학이 담겨 있다. 정당의 사명이야말로 정당의 존재 이유가 돼야 한다. 사명은 국민이 맡긴 미션이다. 미션은 국민과 사회에 확실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권을 잡고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그 사명을 여러 목표로 세분화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 사명을 실현해야 한다. 또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집권 여당은 정치 보복을 배격하는 관용과 포용, 미래에 대한 통찰력으로 통합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의 밀명을 받아 한중 수교 특사 역할을 했던 대구 출신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장은 보수가 몰락한 이유로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내놓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보수정치 원로인 김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제에 응답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라는 답을 제시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잘살아 보자'는 시대적 과제에 응답해 국가주도 경제발전 모델을 실천했다"며 "보수가 진정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를 자처하려면 이들의 업적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당면한 시대 과제에 온몸을 내던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의 몰락은 '제도와 절차' 대신 '동원과 선동'에 기댄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로 인한 정치-종교-유튜브라는 철의 삼각은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 극우의 인큐베이터가 됐다. 보수가 극우를 넘어 온 국민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명을 내놔야 한다. 이를 통해 정당이 법치와 책임, 절제와 공공성이라는 본령을 회복하고 관용과 포용,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 한국 보수는 몰락이 아니라 재건의 길에 설 수 있다. 정계를 은퇴한 한 정치인은 보수 재건의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부패한 기득권 주류세력, 유사종교 집단, 극우 유튜버들만의 세상이 된 정당은 미래가 없다. 정통보수주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유사종교 집단과 절연하고, 당원명부를 세탁하고 부패한 기득권 주류세력과 극우 유튜버들을 퇴출시키는 등 환골탈태해야 한다."

구경모(세종)
정부세종청사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