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음사 출판그룹의 인문·교양 도서 브랜드 반비가 작가와의 교환독서 프로그램. <반비 인스타그램>
사회초년생 정모(여·24)씨는 최근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갖고 있다. 각자 책을 구비해 읽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책을 돌려가며 읽는 식이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스티커를 붙여 인상 깊었던 문장을 표시하고, 메모를 통해 짧은 감상을 남긴다.
이런 독서 방식에 대해 정씨는 "혼자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즉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나와 다른 시각으로 책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의견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이어 "책을 통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추억도 쌓이고, 그 경험 덕분에 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책을 돌려서 읽고 메모를 통해 감상을 공유하는 '교환독서'가 독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챗GPT 생성 이미지>
독서가 힙한 취미라는 '텍스트힙'의 시대, 새로운 독서문화가 뜨고 있다. 같은 책 한 권을 여러 명이 돌려서 읽는 이른바 '교환독서'다. 책 안에 각자 흔적을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생한 반응을 남긴다. 앞선 사람들의 메모를 읽으며 덧붙이다 보면, 세상에 하나뿐인 헌책 한 권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에 '교환독서' 키워드를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처>
교환독서의 유행은 SNS에서 시작됐다. 소수의 독자들이 주체적으로 친한 친구나 SNS로 사람을 모아 책을 읽고, 여러 감상이 담긴 페이지를 SNS에 올리며 유행으로 번졌다. 지난 3월 X(구 트위터)에 올라온 '급류(정대건 소설) 교환독서 후기' 게시물은 지난 12일 기준 17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SNS에는 '우리 교독(교환독서)할래?' '교환독서 하기 좋은 책 리스트' '1분 안에 알려주는 교환독서법' 등의 콘텐츠가 연일 올라온다. 14면에서 계속

같은 책 한 권을 여러 명이 돌려서 읽는 '교환독서'가 독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교환독서의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한 표현과 연결성이다. 교환독서를 하는 또 다른 독자 A씨는 소설 속 주인공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진짜 이해 안 가는 행동이다" 같은 말을 가감없이 적는다. 모두가 완독한 후 다시 책을 돌려받았을 때, 같은 페이지에 다른 사람이 남긴 비슷한 반응을 보고 웃은 적도 있다.
진지한 부분에선 공감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이 가진 배경지식, 고민까지 엿볼 수 있어 책 한 권이 하나의 쉼터가 된다. A씨는 "혼자였다면 속으로만 하거나 빠르게 흘려보낼 생각을 서로 솔직하게 남기니까 즐겁다"면서도 "비슷한 부분에서 위로를 받은 걸 보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타인의 짧은 메모 하나로 마음이 새삼 따뜻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민음사 출판그룹의 인문·교양 도서 브랜드 반비가 작가와의 교환독서 프로그램. <반비 인스타그램>
또 일반적인 독서모임의 경우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시간과 장소를 맞추고 발언을 준비해야 한다. 반면 교환독서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각자 편한 때, 편한 곳에서 독서하면 된다. 참여자들의 성향이 맞다면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처럼 가벼운 메시지를 감상으로 남겨도 돼 큰 부담이 없다. 책을 주고받기만 하면 되는데, 택배라는 전달 방식이 있어 간편하다. 다음 사람에게 책을 전달해야 한다는 조금의 의무감이 더해져 모임의 지속성도 비교적 높다. 이 같은 점들로 교환독서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편집자들이 감상평을 남긴 자사 책 4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휴머니스트 X>
이런 독서문화가 유행하자 출판사들은 교환독서를 마케팅 콘텐츠로 들고 나서고 있다. 민음사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를 통해 사내 직원들이 참여한 교환독서 일화를 공유하며, 교환독서의 책이 된 자사 도서를 간접적으로 소개했다. 민음사 출판그룹의 인문·교양 도서 브랜드 반비는 작가와의 교환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창비는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로 교환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휴머니스트는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편집자들이 감상평을 남긴 자사 책 4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 올라온 교환독서 챌린지 콘텐츠. <민음사TV 캡처>
최근에는 종이책뿐 아니라 전자책 교환독서도 등장했다. 메모 앱 '노션'을 활용해 인상적인 문장과 감상평을 공유하기도 하고, '밀리의 서재' 등 독서 앱에서 메모 기능을 이용해 지인들과 계정을 공유하며 감상을 주고받는 모습도 나타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런 트렌드에 주목하며 지난달 열린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홍보할 때 "교환독서가 새로운 놀이로 유행하고 있다"며 "교환독서처럼 함께 읽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한 축제"라고 했다.

교환독서의 핵심은 책 안에 각자의 흔적을 공유하는 것이다.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생한 감상을 남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같은 교환독서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인주의와 사회적 고립감이 맞물린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된 새로운 독서문화라고 설명했다. 출판업계 한 관계자는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 요즘, 교환독서는 이런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관계 욕구를 충족하는 독서 방식"이라며 "최근 젊은 세대에서 유사한 특성의 독서 방식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