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부유층 사이에선 일본으로의 이민이 뜨거운 화두다. 이른바 '룬르 열풍'이다. 룬르(潤日)는 '달아나다(run)'와 같은 발음기호를 가진 '윤(潤/부유하다)'에 일본(日)을 합친 중국 신조어다. 부유층의 탈(脫)중국 출발점은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공동 부유론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강조되면서다. 처음엔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지로 이민 행렬이 이어졌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 탓에 캐나다가 일찌감치 투자 이민의 문을 닫았고, 미국 역시 반이민 정책으로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특히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홍콩과 마카오가 사실상 중국에 통합된 이후 일본 이민이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중국인 처지에선 일본은 정치적 자유와 치안 안정, 한자 문화권 등 많은 장점이 있어, 북미를 대신할 새로운 안식처로 여긴다. 여기다 일본이 저출산과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비자 문호를 넓힌 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 거주 중국인 수는 87만명이다. 이 추세라면 내년 말에 중국인 거주자 1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룬르 열풍에 대해 일본 사회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처음엔 부자들의 유입이 나쁠 리 없다고 여겼지만, 단기간에 많이 몰려들면서 부동산 가격 폭등, 과도한 교육열, 특유의 네트워킹 등 유별난 중국인 집단이 새로운 고민을 안기는 상황이다. 하지만 인구감소와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지방에선 중국인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다. '유령 도시보단 차이나타운이 낫다'라는 게 지방의 솔직한 심정이다. 일본 사회가 특유의 배타성, 폐쇄성을 이참에 극복할 수 있을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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