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일·스웨덴 전문가 3人 “무장애는 장애인만 위한 특수조치 아냐”

  • 서민지·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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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0 17:38  |  수정 2025-10-25 10:39  |  발행일 2025-10-25
길 위의 차별을 넘어서 - 장애인 이동권, 경계를 허물다⑥

유럽의 도시들은 '무장애'를 더 이상 장애인을 위한 특별조치로 보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즉 누구나 제약 없이 이동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도시와 교통 정책의 뉴노멀로 인식하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는 유모차를 미는 부모나 짐을 끄는 시민에게 편리하다. 수평 승하차는 노인과 자전거 이용자에게도 안전하다. 지난달 영남일보 취재진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장애인 정책 및 교통 전문가들은 "모두가 이동하기 편한 도시가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도시"라고 입을 모았다.


카타리나 크나커 프랑크푸르트시의회 녹색당 교섭단체 대표

카타리나 크나커 프랑크푸르트시의회 녹색당 교섭단체 대표가 지난달 4일 프랑크푸르트시청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카타리나 크나커 프랑크푸르트시의회 녹색당 교섭단체 대표가 지난달 4일 프랑크푸르트시청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이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란 아이, 노인, 장애인을 뜻합니다. 누구나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고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건설이 목표입니다."


지난달 4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청에서 만난 카타리나 크나커 시의회 녹색당 교섭단체 대표(이동성 담당 대변인)의 말이다.


크나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연신 '모두에게 이로운 무장애'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무장애는 휠체어 뿐 아니라 유모차, 자전거 이용자에게도 도움된다"며 "수평 승하차가 되면 누구에게나 편안하다"고 했다. 아울러 누구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도 강조했다.


무장애 정책의 비용 부담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단호했다. 그는 "현재 독일 내 일부 우익 세력이 '너무 비싸다'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는 건 위험하다"며 "사회 전체가 이익을 본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누구든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며 "무장애를 위한 재정을 꾸준히 투입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정치적 과제"라고 덧붙였다.


프랑크푸르트 대중교통 현황에 대해선 "아직 100% 무장애는 아니지만 곧 달성할 것"이라며 "지하철(U-반)은 개조가 필요한 역이 두 곳 있고, 2027년까지 개조되면 전 노선망이 100% 무장애가 된다. 버스와 트램 정류장은 절반가량 완료했다"고 했다.


시민사회와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녹색당에게 본질적인 것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참여시키는 것"이라며 "프랑크푸르트에는 장애인협의체(FBAG)와 이동성 실행 조직이 있다. 이들은 모든 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중교통 사업체에도 승객 자문위원회가 있어 장애가 있는 이용자를 대변한다"고 했다.


아쉬움도 있다. 그는 "버스와 트램에서 절반이 넘는 정류장을 무장애로 개조했지만, 여전히 무장애가 아닌 곳이 많다"며 "'더 많이, 더 빨리' 개선하라는 지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무장애가 잘 구현된 상태'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를 때도 있다. 이럴 땐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는다"고 했다.


앞으로 필요한 조치론 디지털화를 손꼽았다. "모든 정보를 항상 제공하고 최신으로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집에서 미리 '저 역은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는 걸 알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장애 주차면, 전기차 충전소, 특수 자전거 도로 등 새 영역으로 과제가 점차 확대 추세라는 말도 함께 전했다.


요셉 베커 프랑크푸르트 응용과학대학 철도교통학과 교수

요셉 베커 프랑크푸르트 응용과학대학 철도교통학과 교수가 지난달 3일 대학 연구실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대중교통의 무장애 설계와 관련한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요셉 베커 프랑크푸르트 응용과학대학 철도교통학과 교수가 지난달 3일 대학 연구실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대중교통의 무장애 설계와 관련한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프랑크푸르트 응용과학대학의 연구실에서 만난 요셉 베커 교수(철도교통학)는 '대중교통 무장애' 분야 전문가다. 시민이 무장애 구간을 미리 확인해 최적의 이동 경로를 찾도록 돕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베커 교수도 '모두를 위한 디자인(유니버설 디자인)'을 강조했다. 그는 "휠체어 이용자 같은 특정 집단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용자에게 매력적인 해법이어야 한다"며 "개선되는 승하차 방식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유모차나 짐이 있는 이들에게도 편리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장애인 단체, 이용자, 시민사회 등 각 주체들을 가능한 이른 시점부터 참여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독일에서도 무장애 설계가 더디다는 비판은 존재한다. 그는 "정류장 개조가 어렵거나 가능해도 매우 복잡한 곳들이 있다"며 "특히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고 비용이 큰 정류장일수록 무장애 구현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고 지적했다. 또한, "무장애를 둘러싼 책임 주체는 운영회사, 인프라 회사, 지자체, 교통담당주체, 재원을 마련하는 기관 등으로 나눠져 이들이 맞물려야 사업이 잘 굴러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이들을 한 데 모으는 일"이라며 "비록 별도 기관들이지만, '중요한 포인트'에 모두가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난관으론 '재정'을 꼽았다. 그는 "재원은 늘 한정돼 있고, 아직 개조되지 않은 정류장일수록 기술적으로 쉽지 않아 비용도 많이 든다"며 "최근 물가 상승탓에 공사비까지 올라, 앞으로 더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예산을 지원해 사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중요 과제를 꾸준히 처리하려면 우선순위도 명확해야 한다. 수요가 크고 환승에 중요한 핵심 목적지의 역·정류장부터 개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 과제는 '수요응답형 교통'에서의 무장애 보장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베커 교수는 "차량에 탑승하는 인력 없이 스스로 주행하거나 임의 지점에 정차하는 자율주행셔틀이 도입되면,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용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스트리드 툰베이 스톡홀름시 장애인 옴부즈만

스톡홀름시 장애인 옴부즈만인 아스트리드 툰베이 정책담당관이 지난달 10일 스톡홀름시청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스톡홀름시의 장애인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스톡홀름시 장애인 옴부즈만인 아스트리드 툰베이 정책담당관이 지난달 10일 스톡홀름시청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스톡홀름시의 장애인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스웨덴 스톡홀름시의 장애인 옴부즈만 아스트리드 툰베이 정책담당관은 장애인들의 개별 민원보다는 평등한 생활 조건 지원 및 도시 접근성 향상에 주력한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각) 스톡홀름시청에서 만난 툰베이 정책담당관은 스웨덴 장애정책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기반으로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기존 장벽 제거 △개인별 지원 보완 △합리적 조치를 통한 차별 예방 등 네 가지 원칙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장애는 개인 결함이 아니라 환경 문제"라며 "학생에게 장애가 있는 게 아니라 학교 환경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인식전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필요한 소수에게 필수인 조치는 다수에게 편익을 주며,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고 부연했다.


스톡홀름시는 이같은 철학을 정책 전반에 반영해 2024년~2029년 '접근성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시 본청과 11개 행정구, 18개 전문위원회, 산하기업이 공동 참여한다. 의견수렴을 위한 19개 장애인 위원회를 격월로 열고, 생활 불편을 접수하는 앱과 즉각 대응 서비스 센터도 활성화돼 있다.


다양한 개선 사례도 소개했다. 정류장과 보행로 높이 표준화,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 분리, 터널내 조명 및 벽화 설치가 대표적이다. 놀이터에 등받이 있는 그네와 보조 장비를 설치하고, 수영장에 손잡이를 마련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같이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설계였다.


툰베이 정책담당관은 "모든 행정 부문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는 마인드셋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접근성과 참여를 행정의 일상 업무로 편입해 지속적인 대화와 개선을 이어가는 게 진전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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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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