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대구…장애인 이동권, ‘기준 충족’을 넘어 ‘체감’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스웨덴 스톡홀름 등 유럽 도시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복지나 시혜(施惠)가 아닌 시민의 권리로 본다. 장애인에게 필수인 조치는 시민 모두에게 편익을 주며,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는 점을 사회의 기본 전제로 삼는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예비 장애인'으로 본다. 누구나 후천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동권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도시의 기본 설계 원칙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법적 기준 충족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구의 경우, 올해 저상버스 도입률은 52%로 전국 최상위권이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장애인은 드물다. "저상버스를 한 번도 타 본적 없다"는 지역 장애인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그 원인은 이동권 문제 해결의 본질까지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상버스는 늘고 있지만, 정류장 앞 정차를 가로막는 불법주정차와 가로수, 단차 문제는 여전하다. 자동 리프트(경사로)는 고장나기 일쑤이고, 리프트를 내리기까지 흘러가는 시간은 저절로 다른 승객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색 맞추기를 넘어 "누가 얼마나 쉽게 이동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실질적인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형석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장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장애인과 노약자처럼 이동하는 데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배려'라고 생각하고, 선심을 쓰듯 '해주겠다'는 식의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동시설이라고 여기는 것이 기본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난 7월 취재진과 함께 출퇴근길을 동행하며 대구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를 점검(영남일보 7월29일자 3면 보도)했던 휠체어 이용자 송두용씨는 더 나아가 세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송씨는 "프랑크푸르트 글라우부르크슈트라세역처럼 버스 승하차장을 차량에 맞춰 높이는 식의 규격화가 필요하다"며 "또 지난 동행 취재때도 저상버스 자동 리프트 고장으로 불편을 겪었는데, 모든 저상버스의 리프트를 수동으로 전환해 교통약자가 원활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 연방무장애전문기관의 사례를 언급하며 "대구시에서 교통약자이동편의기술지원센터가 운영하고 있지만, 예산 지원의 한계와 법적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을 개정해 각 시·도의 센터 설립근거를 만들고 이 법에 따라 보행환경, 교통시설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지역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나드리콜의 낮은 운행률 문제도 짚으며 "기사 휴무시 차량이 멈추는 구조를 개선해 대기인력을 충원해 하루평균 운행률을 현 58%에서 8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대구장애인편의증진기술지원센터 장문정 편의증진부장은 "결국 문제 해결의 시작은 인식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들에게 물어보면,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첫번째 이유로 '승객들의 인식'을 꼽는다"며 "버스가 장애인을 발견하고, 리프트를 내리면서 걸리는 몇 분의 시간을 비(非)장애인들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대구는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이 쉽지 않은 도시"라며 "예를 들어 '장애인 이용 가능 화장실'도 시민들은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라 구분지어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영유아 거치대와 손잡이가 설치된 모두의 공간이다. 함께 쓰되 휠체어 이용자에게 우선 배려가 필요한 시설일 뿐"이라고 했다. 장 부장은 "횡단보도나 버스정류장 등은 법적 테두리가 없다"며 "물리적인 환경을 구상할 때 모든 교통약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단계적인 계획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체감 현실과 행정의 속도 사이엔 여전히 거리감이 있지만, 개선의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교통약자를 위해 설치된 시설들이 설치 기준에 적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사전·사후검사를 통해 접근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민지·박지현기자 mjs858@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