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현장에서] 7천개 섬·180개 언어가 만들어낸 ‘주변부 문학’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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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3 14:45  |  수정 2025-10-23 18:33  |  발행일 2025-10-23
필리핀 시인들이 말하는 필리핀 문학세계
필리핀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멀리 알루난(중간)과 크리스티안 코르데로(오른쪽)이 우리의 국가 문학: 필리핀 정신과 상상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멀리 알루난(중간)과 크리스티안 코르데로(오른쪽)이 '우리의 국가 문학: 필리핀 정신과 상상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수많은 섬과 언어는 상상력 넘치는 필리핀 문학의 토대입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이 필리핀으로 선정되면서, 도서전 기간 필리핀의 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특히 '상상력이 공기를 채운다'는 주제 아래 필리핀 특유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행사가 다수 개최됐다. 이 일환으로 지난 15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필리핀 주빈관에서 열린 '우리의 국가 문학: 필리핀 정신과 상상력' 세션은 필리핀 문학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강연이었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멀리 알루난(Merlie Alunan)과 크리스티안 코르데로(Christian Cordero)가 강연자로 나서 주변부의 관점에서 필리핀 민족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멀리는 필리핀의 수많은 섬을 지도로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녀는 필리핀 문학의 핵심을 "섬과 언어가 만들어내는 다양성"으로 설명했다. 필리핀 문학은 7천641개 섬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언어 지형 위에서 자라났다. 원주민 언어까지 포함하면 180여개의 언어가 공존하며 루손, 비사야스, 민다나오 등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영어와 타갈로그어가 표준어로 자리 잡았지만, 세부어(Sebuano), 비콜어(Bicol), 힐리가이논(Hiligaynon) 등 지역 언어로 쓰인 문학은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멀리는 "필리핀에는 수십 개의 언어가 공존하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언어를 지배하지 않는다"며 "바람이 섬과 섬을 오가듯 언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고유성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문학 작품들도 중심보다는 주변부에 집중한다. 각 지역의 언어와 일상을 담아내는 주변부의 서사가 다수다.


크리스티안은 "필리핀이 식민지 지배를 겪었지만 여전히 상상하고 고군분투하는 젊은 나라"라고 소개했다. 그는 "식민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지역 언어로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하다"며 "여러 지역어로 쓰인 작품들이 각 지역에서 서로 번역되고, 대학과 지역 문화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연구·출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서점도 합세한다. 크리스티안은 시인이자 번역가이면서 독립서점 대표이기도 하다. 그가 운영하는 '새비지 마인드(Savage Mind)'는 나가시티의 지역 예술가와 작가들이 교류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그는 "필리핀 문학은 작가 혼자 쓰는 고립된 작품이 아니라, 언어와 독자,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경험"이라며 "우리는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상상력을 이어간다"고 전했다.


글·사진=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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