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현장에서] 오디오북·다양성…글로벌 리더들이 말하는 출판시장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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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3 14:45  |  수정 2025-10-23 18:27  |  발행일 2025-10-23
EU에 주목하다 세션에 패널로 참가한 오디오북 전문가들이 유럽의 오디오북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U에 주목하다' 세션에 패널로 참가한 오디오북 전문가들이 유럽의 오디오북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 산업의 부상,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출판시장은 어느 때보다 거센 변화를 맞고 있다. 전쟁과 도서 금지, 보이지 않는 검열로 출판의 자유를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전환점 가운데서 열린 올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만남의 장'이란 키워드 아래, 최근 출판계의 주요 이슈를 특별 주제로 선정해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업계의 저명한 리더들이 나서 AI와 오디오북, 표현의 자유 및 다양성, 웹툰 등 출판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의제에 관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다수의 세션에 직접 참가해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출판시장 현황과 업계 리더들의 통찰을 공유한다.


전쟁 중의 서적 판매를 주제로 에린 콕스 미국 출판관점 발행인(왼쪽부터), 올렉시 에린착 우크라이나 센스서점 대표, 바네사 마르티니 미국 그린애플북스 담당자, 마흐무드 무나 예루살렘 교육서점 대표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쟁 중의 서적 판매'를 주제로 에린 콕스 미국 출판관점 발행인(왼쪽부터), 올렉시 에린착 우크라이나 센스서점 대표, 바네사 마르티니 미국 그린애플북스 담당자, 마흐무드 무나 예루살렘 교육서점 대표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쟁 중의 서적 판매


"책은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자극하는 수단입니다."


양극화, 검열, 심지어는 전면적인 전쟁이 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시대다. 이때 서점들은 어떻게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지난 15일 낮 12시(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미국, 예루살렘의 서점 관계자들이 모여 여러 압박 속에서도 책을 보호하고 서점을 유지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에린 콕스 미국 출판관점 발행인이 사회를 맡아, 올렉시 에린착 우크라이나 센스서점 대표, 바네사 마르티니 미국 그린애플북스 관계자, 마흐무드 무나 예루살렘 교육서점 대표가 '전쟁 중의 서적 판매'를 주제로 각자의 경험을 털어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우크라이나의 서점들은 자연스럽게 지역 자원봉사 거점으로 바뀌었다. 올렉시 에린착 우크라이나 센스서점 대표는 "우크라이나어 서적을 지키는 일이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쟁 중 폭격과 단전 속에서도 서점들이 문을 닫지 않는 이유도 역시 사람들이 여전히 일상 속 문화 향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센스서점은 현재 한달 50회 이상의 문화행사를 열며 지역 출판사·학교·기업과 협력해 '책을 통한 공동체 유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문학 강연, 낭독회, 북클럽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지켜나간다. 센스서점뿐만 아니라 다른 서점들도 해외 독자와의 교류, 서적 기부 캠페인 등 연대를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흐무드 무나가 운영 중인 예루살렘의 교육서점은 동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40년 넘게 이어져온 서점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스라엘 경찰의 압수수색과 단속이 이어지며 서점 등 문화 공간 자체가 감시의 대상이 됐다. 마흐무드 무나는 "경찰은 서점이 폭력의 원인이라고 한다. 최근 경찰의 급습과 심문을 겪었고, 서점 직원들이 선동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과 해외 서점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된다"며 "서점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했다.


그림책 그루팔로(The Gruffalo)의 작가 악셀 셰플러(왼쪽)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키즈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림책 '그루팔로(The Gruffalo)'의 작가 악셀 셰플러(왼쪽)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키즈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키즈 콘퍼런스


출판사는 물론, 아동도서와 그 창작자마저도 논란과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2023년부터 '키즈 콘퍼런스'를 열고 아동서적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해 왔다. 올해는 '깨지기 쉬운 아동도서'를 주제로, 어린이들이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도 다양한 책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뤘다.


악셀 셰플러의 대표작 그루팔로. <비룡소 제공>

악셀 셰플러의 대표작 '그루팔로'. <비룡소 제공>

이날 오후 4시부터 진행된 콘퍼런스 1부에서는 그림책 '그루팔로(The Gruffalo)'의 작가 악셀 셰플러가 나서 아동의 독서율 하락과 도서관 감소 문제를 지적했다. 영국 국가문해력신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아동 중 23.7%만이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0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또 저소득 지역 학교는 4곳 중 1곳만이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책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닿아야 할 공공시스템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 셰플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이 바뀔 때까지 마냥 기다릴수만은 없다"며 "우리(출판계)가 힘을 합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셰플러는 영국의 문해력 향상 비영리단체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출판사와 협력해 그의 '그루팔로' 시리즈 무료 배포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키즈 콘퍼런스 2부에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도서 금지(Book Ban)를 다뤘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키즈 콘퍼런스 2부에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도서 금지(Book Ban)'를 다뤘다.

2부에선 학교와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도서 금지(Book Ban)'를 다뤘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학교와 도서관에서 다양성을 다룬 책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미국도서관협회에 따르면 2020년 300건이던 도서 금지 사례는 2023년 9천건이 넘었다. 존 게겟 맥밀란 출판사 CEO는 "일부 주에서는 교사나 사서가 특정 책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게겟은 미국도서관협회와 함께 '북 레주메(Book Resume)'를 제작해, 저자의 이력, 책의 주제, 수상 내역 등을 문서로 정리해 지역사회에 배포하고 있다. 출판사들은 연합을 통해 청원 운동, 입법 로비 등 공동 행동을 이어간다. 그는 "당장은 허위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금서 지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오디오 스테이지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제공·Ingo Hattendorf 촬영>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오디오 스테이지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제공·Ingo Hattendorf 촬영>

◆오디오북 시장


출판의 자유, 다양성에 관한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된 한편, 최신 출판시장 트렌드도 활발히 다뤄졌다. 이날 메쎄 전시장 내 프랑크푸르트 스튜디오에서는 오후 내내 오디오북과 관련한 여러 포럼이 진행됐다. 그 중 하나인 'EU에 주목하다'와 '오디오북 청취자들이 원하는 것' 세션에서는 각국의 오디오북 전문가들이 모여, 오디오북 수요가 높은 유럽의 사례를 통해 관련 출판사를 위한 트렌드와 전략을 제시했다.


'EU에 주목하다' 세션에 패널로 참가한 바바라 크나베 오더블(EU·라틴아메리카) 콘텐츠 인수 책임자는 오더블의 연례 조사 '오더블 컴퍼스(Audible Compass)' 결과를 소개하며 "유럽은 국가별 청취 성향이 뚜렷하지만, 공통적으로 오디오북 이용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취와 독서는 대체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관계"라며 "듣는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오디오북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고 말했다.


전자책 플랫폼 북비트(BookBeat)의 CEO 니콜라스 아민이 오디오북 청취자들이 원하는 것 세션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전자책 플랫폼 북비트(BookBeat)의 CEO 니콜라스 아민이 '오디오북 청취자들이 원하는 것' 세션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오디오북 청취자들이 원하는 것' 세션에서는 전자책 플랫폼 북비트(BookBeat)의 CEO 니콜라스 아민이 유럽 청취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디오북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를 공유했다. 이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종이책보다 오디오북을 통해 이야기를 더 오래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사용자의 60% 이상이 시리즈물을 완독하며, 판타지·로맨스·추리 장르의 몰입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니콜라스는 "짧은 콘텐츠가 유행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용자들은 10시간이 넘는 장편 오디오북도 끝까지 듣는다"며 "핵심은 분량이 아니라 서사의 흡입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트리밍 환경에서는 많이 내는 것보다 적게 내더라도 집중 투자할 작품을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AI 낭독의 한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AI 낭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여전히 인간 성우가 읽은 프리미엄 콘텐츠를 선호한다"며 "AI 번역 기술은 해외 출간과 현지화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보조 수단"이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전시장에 마련된 한 만화책 전문 부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전시장에 마련된 한 만화책 전문 부스.

◆웹툰·웹코믹스 시장


웹툰·웹코믹스 산업은 올해 도서전에서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메쎄 전시장 6관 인터내셔널 스테이지에선 '글로벌 웹툰 및 웹코믹스 시장: 부와 역동성' 포럼이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선 웹툰 및 만화책이 독서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했다. 특히 패널들은 한국과 일본의 웹툰 산업을 선례로 삼으며 웹툰시장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이날 패널로 참가한 영국의 마이클 나칸 코믹스잇 CEO는 웹툰을 "책 읽기와 영상 소비의 중간 지점에 있는 새로운 독서문화"로 정의했다. 그는 영국 아동의 독서율 감소를 언급하며 "영국 아동의 3분의 1이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다"며 "웹툰은 디지털 세대가 다시 독서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하나의 통로"라고 강조했다. 그가 운영 중인 디지털 만화 플랫폼 코스믹잇은 웹툰을 통한 읽기를 통해 '읽는 습관 회복'을 지향한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웹툰이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서구권에도 새로운 읽기 형식을 도입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어린이·청소년들이 웹툰을 통해 읽기에 흥미를 느끼면 독서는 물론 문해력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다.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메쎄 전시장 6관 인터내셔널 스테이지에서 글로벌 웹툰 및 웹코믹스 시장: 부와 역동성 포럼이 열리고 있다.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메쎄 전시장 6관 인터내셔널 스테이지에서 '글로벌 웹툰 및 웹코믹스 시장: 부와 역동성' 포럼이 열리고 있다.

대만에서도 최근 웹툰·만화책 작가들의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로렌 로 감마니아그룹 감독은 "대만 젊은 세대는 일본 만화와 한국 웹툰에 익숙하다"며 "이 영향이 최근 대만 창작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웹툰은 단편 드라마나 게임으로 확장 가능한 'IP 생태계의 허브'이기에 중요한 산업"이라고 했다. 사회자인 세바스티앙 세바스티앙 셀리몽 화이트드래곤 이벤트 대표도 이에 맞받아치며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웹툰을 포함한 K-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육성한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문화 브랜드를 구축했다"며 "유럽 역시 문화산업 간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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