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30년 분권 보고서] 대구 ‘통합-분리-소멸’, 주민은 어디에 있나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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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8 16:49  |  발행일 2025-10-28
지난해 4월 세종시 지방시대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제6차 지방시대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지방시대위원회 제공

지난해 4월 세종시 지방시대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제6차 지방시대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지방시대위원회 제공

1995년 민선 지방자치 부활 이후 30년이 흘렀다. 지방은 이제 지역민 스스로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를 걷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됐고, 지방은 '소멸'이라는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대구는 그 절벽 앞에서 대규모 행정 변천(變遷)을 맞고 있다. 군위군 편입이라는 '통합'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달서구·북구 등 인구 과밀지역에선 '분리' 논의를 내재하고 있다. 서구·남구 등 구도심은 인구 '소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영남일보는 대구지역 기초지자체의 변천을 '지방분권과 주민 주권'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향후 지역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본다.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 2월 열린 민선8기 3차년도 제2차 공동회장단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 2월 열린 '민선8기 3차년도 제2차 공동회장단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군위군 편입에서 TK통합까지


경북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은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이란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추진된 '지역주도' 행정구역 개편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 지방자치사에서 광역 경계를 주민의 의사로 바꾼 첫 케이스다. 대구 편입 이후 군위엔 공항 접근도로와 배후 물류단지 조성 등 각종 개발계획이 쏟아지고 있다. 대구 면적을 2배 가량 확장하며 'TK통합'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행정체계 전환과정에서 조직개편과 예산조정이 늦어지고 있다. 지역민들은 여전히 '대구'도, '경북'도 아닌 과도기에 놓여있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행정효율과 지역경제란 거대담론에 치중한 나머지, '풀뿌리 자치'와 '농어촌 특수성'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간과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 과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향후 TK통합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여긴다. 특히, 대구경북처럼 인구 500만명 규모의 '광역 연합'이 출범할 경우, 그 수장은 현직 광역단체장 권한을 뛰어넘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정작 이전 논의에선 '누가 운영할 것이냐'를 놓고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만 한다. 의미 있는 권한을 가져오는 내용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다.


배준구 경성대 명예교수는 '의미 있는 권한'의 핵심을 재정 자율성 확보에서 찾았다. 프랑스가 분권개혁을 통해 지방세 비중을 37%→68% 확대한 사례를 통해 "재정을 넘겨주고, 자치권도 이양해 마음껏 실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중앙-지방 관계를 수평적·사후통제로 바꿔 '행정 민주화'를 실현한 프랑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국 자치단체별 공무원 1인당 주민수 상위 10곳. <행정안전부 자료 발췌>

전국 자치단체별 공무원 1인당 주민수 상위 10곳. <행정안전부 자료 발췌>

◆단순 분리 아닌 주민으로의 분권


대구 행정구역 변천사에서 '분리' 논의는 주로 인구 증가와 행정 수요 폭증에서 비롯됐다. 달서구(52만명)는 전국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인구가 많다. 북구(41만명)도 대규모 개발과 함께 행정수요가 급증한 곳이다.


실제 달서구·북구는 전국 기초지자체 중 '공무원 1인당 주민 수'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달서구는 공무원 1명이 주민 408명(전국 226개 기초단체 중 상위 3위)을, 북구는 361명(10위)을 각각 담당한다.


인구과밀은 행정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주민만족도 하락과 인구 이탈로 연결된다. 현재 분구 논의는 중단됐지만, TK통합 등 거시적 변화 물결이 일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 분구 논의만으론 행정 효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행정구역 개편의 복잡성과 재정 투입 부담 때문에 단순한 분구 대신,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책임 읍·면·동제' 가 제시되고 있다. 주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읍·면·동에 인력과 재정, 사무처리 권한을 대폭 이양해 '현장형 자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지방자치는 외국 제도를 모방한 수준이기에, 지금이라도 '한국형 분권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경본부 상임대표는 "우린 여전히 공무원 자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초의회가 주민과 소통하는 역량이 약하다. 지역분권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의 분권 역시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지역소멸 대책, 결국은 '권한'


인구감소와 출생률 저하, 노령화로 대표되는 '소멸' 위기는 대구 구도심인 서구, 남구 등의 생존을 위협한다. 여기서 주목할점은 이들 지역이 소멸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개발사업들도 여전히 중앙정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것. 이는 지방분권이 단순한 권한 이양을 넘어 '지역 생존권 확보'와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서구는 서대구 KTX역 개통을 계기로 역세권 일대를 복합환승센터, 첨단산단, 주거·상업시설 등을 갖춘 거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서대구역세권 개발은 민자 유치 난항과 대규모 개발사업에 필수적인 중앙정부의 도시계획변경 승인·교통영향평가·예비타당성 조사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에 묶여 당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남구는 무려 70년간 캠프워커·캠프헨리 등 미군부대의 장기 주둔 탓에 도시공간이 단절되고 개발이 정체돼 왔다. 최근 캠프워커 일부 부지에 대한 소유권이 대구시로 넘어왔다. 하지만 3차순환도로 완전개통 등 이 부지의 온전한 활용 계획은 토양 오염 정화 비용 부담 문제부터 국방부 및 중앙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해 장담할 수 없다.


남구의 숙원은 결국 '토지주권 확보'다. 국가안보를 위해 장기간 희생한 지역이 이제는 주민 주도형 개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토지 소유와 활용 권한이 지방정부로 확실히 이양되는 게 급선무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과는 별개로, 남구가 토지의 소유권과 개발 권한을 확실히 확보해야만 인구 유입과 지역 활성화를 온전히 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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