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변호사
변호사라는 직업도 본질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법원에 내는 변론서든 의뢰인에게 제출하는 자문의견서든, 최종 산물은 대부분 글의 형태다. 그런데 최근 법률 분야에 특화된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법률 문서 작성은 혁신적으로 쉬워졌다. 원하는 판례를 바로 찾아주고, 체계적인 법리 설명까지 순식간에 정리해주니 예전 같으면 며칠씩 붙잡아야 할 서면을 몇 시간 만에 완성할 정도다. 업무 효율성 면에서는 분명 반길 만한 변화지만, AI가 긍정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 같으면 필수인 '고민의 과정'을 아예 생략한 채 AI에게 곧장 질문하고, AI가 만들어준 서면을 검증 정도만 한 뒤 내 문서로 확정하는 경우도 많다. 문서는 빨리 나오지만 사고 과정은 점점 짧아지는,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유혹이다.
사실 글쓰기 방식은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기술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30여 년 전, 첫 직장인 신문사에서 기사를 원고지에 썼다. 첫 문장을 쓰기 전 전체 구조와 논지를 머릿속에서 충분히 정리해야만 글이 시작될 수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첫 문장이 나오지 않고, 첫 문장이 없으면 글도 없었다. 쓰다가 흐름이 달라지면 한 페이지를 통째로 다시 써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 노트북 시대가 열렸다. 원고지에서 키보드로 넘어오면서 글쓰기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더 이상 머릿속에서 모든 흐름을 정리해둘 필요가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일단 화면에 쏟아낸 뒤, 지우고 옮기고 덧붙이면서 생각과 글이 동시에 정리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긴 글도 훨씬 편하게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자료는 글에 담을 수가 없었기에 생각이든 글이든 내 경험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내가 경험하고 아는 세계 안에서만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던 시대였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그 마지막 한계를 허물었다. 적절한 키워드만 던지면 내가 알지 못했던 자료까지 찾아 정리해주고, 단 몇 분 만에 번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내가 생각하고 찾아 본' 자료가 아니라 AI가 그 구조를 짜 놓은 결과물을 검토는 했지만 이 서면을 내가 썼다는 의미로 '변호사 정혜진'의 도장을 찍어도 괜찮은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대학의 AI 부정행위 논란을 보며, 이 고민이 어쩌면 '기성세대의 인지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지에서 키보드, 그리고 AI로 이어지는 변화를 직접 겪은 세대에게 AI는 편리하지만 너무 혁신적이어서 약간은 두렵고 그래서 조심스러운 도구다. 반면 보고서 초안, 코드 디버깅, 텍스트 요약, 문제 풀이, 검색까지 일상의 기본 언어로 AI를 다루며 자란 요즘 대학생들에게 AI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 환경이다. 그들에게 "AI를 쓰지 말라"는 시험은 "효율적인 기본 도구를 일부러 버리고 비효율적으로 해라"라는 요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정직함의 가치야 시대를 막론하고 그 중요성에 변함이 없지만, 학생들 탓만 할 게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구조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특히 공감이 간다. 교육현장에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변호사 업계에서도 AI의 적절한 활용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 AI 시대 혼란을 잘 보여주는 이번 사태의 추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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