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AI·스토리텔링·지속가능성…디자인 박람회서 본 최신 디자인 트렌드

  • 조현희
  • |
  • 입력 2025-11-20 16:58  |  수정 2025-11-20 18:03  |  발행일 2025-11-20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 스페셜리스트 특별존 내 6 STUDIOS 부스.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였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 스페셜리스트 특별존 내 6 STUDIOS 부스.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였다.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를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해왔다. 과거 디자인이 기능성에만 중점을 뒀다면, 오늘날 디자인은 그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적·기능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환경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도 이용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최대 디자인 산업 박람회인 '디자인코리아'와 디자인 문화 콘텐츠 전시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열린 두 행사는 디자인 산업의 최신 동향과 혁신 사례를 다양한 전시를 통해 보여줬다. 올해 23회를 맞은 디자인코리아는 산업부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해 진행됐다. 행사는 '디자인이 그리는 새로운 질서들'을 주제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만드는 미래 디자인의 방향을 조명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과 디자이너 등이 참여해 생성형 AI 기반의 혁신 제품들과 디자인을 선보였다.


지난 15일 디자인코리아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제품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15일 디자인코리아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제품을 관람하고 있다.

같은 기간 디자인하우스가 주최, 월간 디자인이 주관한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디자인의 길을 찾다(Wayfinding)'를 주제로 기획됐다. 크리에이티브 그룹 레벨나인(Rebel9)의 아트디렉팅 아래, 디자이너를 '항해자'로, 디자인을 '길을 찾는 행위'로 표현했다. 전시는 글로벌 디자인 산업의 흐름과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로 꾸며졌다. 975명의 디자이너와 330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특히 올해는 디자인 스튜디오, 기업, 전문 회사의 참여가 대폭 확대돼 영감 교류의 장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됐다.


지난 15일 이들 행사들에 참가해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 디자인 업계가 갖고 있는 화두를 엿볼 수 있었다. 2025년 현재 디자인 업계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이너 스페셜리스트 특별존 내 서정화스튜디오 부스는 자연 소재의 물성에 주목해 제작한 제품을 선보였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이너 스페셜리스트 특별존 내 서정화스튜디오 부스는 자연 소재의 물성에 주목해 제작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야기·철학 담긴 가구 디자인 주목


올해 행사 현장에서 특히 눈에 띈 공간은 가구·소품 디자인 부스였다. 최근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20팀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에이전시가 참가한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 스페셜리스트' 특별존에서도 가구·소품 디자인 브랜드에 발걸음이 몰렸다. 머무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의자, 조명, 오브제 등 생활과 맞닿은 제품 앞에서 관람객들이 유난히 오래 머물었다.


참가 브랜드들은 단순히 잘 만든 제품을 보여주기보다 제품을 둘러싼 이야기,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재료, 제작 과정, 경험을 중심에 둔 스토리텔링형 작업물이 다수였다.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서정화의 서정화스튜디오는 재료가 가진 성질에 주목해 실용적인 가구를 만드는 브랜드다. 이번 전시에서 서정화스튜디오는 자연 소재의 물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조형 가구를 선보였다.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특별전에서 젊은 디자이너 조덕희는 SEIENDE의 Archive 시리즈를 전시했다. 자아 정체성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시각화한 실험적 가구 시리즈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자신을 지탱하는 인간의 내면을 겉으로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단단히 연결된 형태로 보여줬다.


SEIENDE의 Archive 시리즈. 자아 정체성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시각화한 실험적 가구다.

SEIENDE의 Archive 시리즈. 자아 정체성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시각화한 실험적 가구다.

가구를 '누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기획전 '누가 만들었을까?X무제움'도 개최됐다. 현시대의 디자이너를 조명하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20세기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디자인 가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무제움'이 함께 주최했다. 주최 측은 "무수히 많은 오브제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무엇을 샀는가에 집중하지만, 하나의 가구가 어떤 작가의 시선과 철학을 담아 완성되는지, 그 과정 속에 숨어 있는 고민과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연이화의 AI 기반 전기 세단 콘셉트카 오아시스 비전 2030.

서연이화의 AI 기반 전기 세단 콘셉트카 '오아시스 비전 2030'.

서연이화의 AI 기반 전기 세단 콘셉트카 오아시스 비전 2030 차 내부.

서연이화의 AI 기반 전기 세단 콘셉트카 '오아시스 비전 2030' 차 내부.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AI·디자인 결합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디자인 산업도 전환점을 맞았다. 이제 디자인은 기술과 인간의 경험을 연결하며 산업의 미래를 시각화하는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디자인코리아는 AI가 주도하는 산업 전환의 현장을 400점이 넘는 제품과 디자인,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줬다.


특히 로봇·자율주행 차량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AI와 디자인을 결합한 사례가 두드러졌다. 자동사 부품사 서연이화는 AI 기반 전기 세단 콘셉트카 '오아시스 비전 2030'을 공개했다. 자율주행 시대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이동형 오아시스'를 제안하는 모델이다. 도심 속에서 잠시 머물며 재충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량 내부는 명상·주행·휴식 등 모드에 따라 조명과 공간 구조가 자동으로 변하는 AI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러면서 차분한 색감을 통해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하고, 지속가능한 소재와 섬세한 마감 처리로 사용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홍익대 디자인 랩 헤이테이트(HEY TATE)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협업해 만든 AI 반려로봇 ROOT.

홍익대 디자인 랩 '헤이테이트(HEY TATE)'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협업해 만든 AI 반려로봇 'ROOT'.

홍익대 디자인 랩 '헤이테이트(HEY TATE)'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협업해 AI 반려로봇 '알프레드(AlFred)'를 공개했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상상하며 감성적인 디자인과 휴머노이드 기술을 결합한 작품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음성·언어 인식 기술을 접목해 AI 시대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제안했다. 각진 형태의 기존 휴머노이드와 달리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해 차가운 느낌을 줄였다. 또 미래 지구 환경에서 새로운 인간·자연·기계 관계를 탐구해 제작한 AI 반려로봇 'ROOT'도 함께 전시했다.


가전업계에서도 AI와 디자인 간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간 인식 AI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패널 '스페이셜 사이니지(Spatial Signage)'를 전시했다. 디스플레이엔 AI가 관람객의 위치를 감지해 밝기와 깊이감을 자동 조절하는 기능이 담겼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내 페이퍼콘크리트 부스. 파쇄지를 활용한 소품을 만든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내 페이퍼콘크리트 부스. 파쇄지를 활용한 소품을 만든다.

◆파쇄지를 재료로…새로운 친환경 실험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커지는 가운데 디자인 업계에서도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화두다. 디자인코리아 행사 기간 시상이 이뤄지는 '굿디자인 코리아'는 산업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디자인 시상제도다. 올해도 혁신성과 사회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가 이뤄졌고, △세라젬의 혈액 순환 개선 의료기기 '셀트론 순환 체어(Celltron Circulation Chair)' △HDC현대산업개발의 잠실 래미안 아이파크 단지 내 '파크오아시스' △BHC의 패키지 '지구를 위한 첫걸음(First Step for the Earth)' 등 친환경 디자인이 수상작으로 다수 올랐다.


행사 현장에서도 업사이클링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들이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가한 페이퍼콘크리트는 파쇄지를 활용한 소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잉크 섞인 인쇄물, 코팅된 종이 등 파쇄지 대부분이 폐기되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재활용해 제작한 무드등, 화분 등 감각적 소품을 선보였다. 폐플라스틱과 전통 문양을 결합한 디자인을 제안한 '재이담'과 '대광도요'도 관심을 모았다.


기술과 지속가능성을 결합한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타이어X모델솔루션' 부스에선 폐타이어를 활용한 콘셉트 타이어가 국내 최초로 공개됐고, 모빌리티 디자인 기업 'KLIO(클리오)'는 모듈 단위로 쉽게 조립·분해가 가능한 전기차 'MULE(뮬)'을 선보이며 미래 이동성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포스터 기획전 그래픽 유니버스 2025: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포스터.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포스터 기획전 '그래픽 유니버스 2025: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포스터'.

◆실험적 타이포그래피·일러스트…포스터 기획전도


과거 포스터는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에 그쳤지만 현대에 와선 예술의 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자체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아 수집의 대상이 되고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도 포스터 기획전이 열렸다. 올해 처음으로 기획된 '그래픽 유니버스 2025: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포스터' 전시는 14개 팀이 제작한 2025년 포스터와 이들이 추천하는 28팀의 디자이너 포스터 작품을 끝말잇기 형식으로 소개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서울국제도서전,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올해 주요 문화행사의 포스터가 다수였다.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면서도 행사의 주제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상징했다.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레이아웃, 저명도 색감, 추상적인 일러스트가 많이 나타났다.


이번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대해 디자인하우스 관계자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차세대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새로운 디자인의 항로를 제시하는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역량 있는 디자이너들의 전시는 물론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소개하고 산업 관계자들과의 비즈니스 교류를 활성화하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