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가질 수 없는 국보, 붓끝으로 훔치다”… 캔버스에 되살아난 천년의 미학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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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3 15:34  |  수정 2025-11-24 13:09  |  발행일 2025-11-24
서양화가 김상우 개인전 ‘국보의 혼을 훔치다’…12월12일까지 갤러리동원 앞산
“가질 수 없는 국보, 캔버스에 그 영혼을 훔쳐 담았다”
고려청자와 달항아리, 반가사유상이 유화(油畵)라는 낯선 옷 입고 되살아나
김상우 작가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뒤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배치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김상우 작가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뒤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배치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물관의 두꺼운 유리장 너머, 어둑한 조명 아래 잠들어 있던 국보(國寶)들이 캔버스 위에서 생생한 숨결을 얻었다. 서양의 대표적 회화 기법인 유화로 한국 고유의 미(美)를 재해석한 김상우 작가의 개인전 '국보의 혼을 훔치다'展(전)이 오는 12월12일까지 대구 갤러리동원 앞산점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훔치다'라는 도발적 제목처럼, 단순히 문화유산의 외형을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원작의 아우라와 영혼을 작가의 시선으로 포착해 낸 30여 점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이는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국가적 보물을 붓끝으로 재현하고, 나아가 관람객과 그 감동을 나누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의지를 담고 있다.


김 작가는 지난 2년간 국립중앙박물관과 대구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전국의 주요 미술·박물관을 수없이 답사하며 우리 문화유산에 천착해왔다. 그는 "박물관에서 마주한 고려청자의 비색과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완벽한 미학적 성취였다"며 "단순히 눈으로 감상하는 것을 넘어, 화가로서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옮기고 싶은 강렬한 충동과 욕망이 작업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김상우 청자 상감 연꽃 갈대 백로무늬 편호

김상우 '청자 상감 연꽃 갈대 백로무늬 편호'

김상우 청자 동화 연화문표주박모양 주전자

김상우 '청자 동화 연화문표주박모양 주전자'

김상우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김상우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전시작들은 실물 크기보다 2배 이상 확대돼 관람객에게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작가는 사진 같은 정밀 묘사를 기반으로 하되, 기계적 재현에 머물지 않았다. 안개가 낀 듯한 몽환적 느낌으로 배경을 처리하거나,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통해 피사체에 깊은 공간감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국보 294호)' 등 익숙한 도자기들을 마치 처음 보는 듯한 낯설고도 신비로운 감각으로 마주하게 된다.


단순 재현에 그치지 않은 '명작의 콜라주' 또한 이번 전시의 백미다. 작가는 서로 다른 명작들을 한 화면에 융복합해 새로운 서사를 부여했다. 조선 백자의 배경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배치해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가늠할 수 있게 했고, 백자와 신윤복의 '미인도'를 하나의 화면에 구성해 도자기의 곡선미와 여인의 자태를 절묘하게 연결했다. 김 작가는 "도자기와 옛 그림이 지닌 이미지를 연결해, 단절된 문화유산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서의 새로운 조형적 재미와 의미를 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동원 앞산점에 김상우 작가의 작품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에서)(왼쪽)과 금동관음보살입상 : 백제의 미소(용인 호암박물관에서)가 전시 중이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갤러리동원 앞산점에 김상우 작가의 작품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에서)'(왼쪽)과 '금동관음보살입상 : 백제의 미소(용인 호암박물관에서)'가 전시 중이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본래 인물화에 정통한 김 작가는 이번 정물 작업에서 오히려 인물화 이상의 고도화된 집중력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김 작가는 "도깨비 같은 상상의 존재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형이 가능하지만, 국보는 누구나 아는 '스타'이자 완벽한 조형성을 갖춘 피사체이기에 그 고유의 빛깔과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청동으로 된 반가사유상의 경우, 인물의 화사한 피부톤과 달리 청동 특유의 어둡고 묵직한 질감 속에서 배어 나오는 오묘한 광택과 세월의 깊이를 유화 물감으로 구현해 내는 데 공을 들였다.


갤러리 동원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최근의 'K-컬처' 열풍과 맞물려 더욱 의미가 깊다. 박물관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엄숙한 분위기를 벗어나, 갤러리와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 문화의 정수를 보다 친근하게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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