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봉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장
얼마 전, 대학 진학 문제를 두고 부모와 자녀가 격하게 갈등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부모는 왜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굳이 반대하는 걸까? 또 왜 자신의 판단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특정 학과를 고집하는 걸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진로 선택의 차이가 아니라 '초점착시와 확증편향'이라는 인지적 함정이 깊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니얼 카너먼이 지적한 초점착시는, 눈에 잘 띄는 특정 요소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간과하게 만드는 심리적 경향이다. 부모 세대는 '안정된 직업', '높은 취업률', '경제적 보상'처럼 눈에 드러나는 지표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래서 "좋은 학과 = 안정된 미래"라는 단순 공식이 절대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교육은 소득과 행복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같은 교육을 받아도 사람마다 삶의 만족도와 소득 격차는 크다. 그럼에도 부모는 눈앞의 하나의 요소에 집착하며 다른 중요한 변수들을 놓치기 쉽다.
반면 청소년들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 심리적 안정, 삶의 질과 만족을 중시한다. 부모 세대가 강조하는 안정성을 '구시대적 기준'으로 느끼고 반발하는 이유다. 결국 양측은 각자가 중요하다고 믿는 지점에만 초점을 맞춘 채, 상대의 관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초점착시는 이렇게 세대 간 시야 차이를 확대하고, 갈등을 부추긴다.
문제는 여기에 확증편향이 더해지면서 갈등이 고착된다는 점이다.
부모는 "이 길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찾아내고, 자녀의 의견과 다른 선택은 '위험한 선택'으로 치부한다. 반대로 청소년은 "부모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정보만 수집하며, 부모의 조언 전체를 '간섭'으로 해석한다. SNS 알고리즘과 주변 환경은 이러한 편향을 증폭시켜 서로를 자기 확신 속에 가둔다. 말은 들리지 않고, 대화는 설득이 아닌 방어와 반박, 감정과 오해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인지적 함정은 가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한 이슈에 모든 판단을 몰아주고, 그것이 삶 전체를 좌우할 것처럼 과장한다. 특정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거나,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도 초점착시의 결과다. 여기에 확증편향이 겹치면 사회적 대립은 심화된다.
세대 갈등도 같은 구조를 갖는다. 부모는 자신의 시대적 경험을 기준으로 미래를 판단하고, 자녀는 자신의 현재를 중심으로 미래를 그린다. 서로가 보는 세계의 좌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 '확실한 진실'을 내세우며 대화에 나선다. 결국 갈등은 서로의 세계가 충돌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관계는 멀어진다.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옳다"는 확신을 더 단단히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태도가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청소년도 부모가 안정성을 강조하는 배경과 진심을 살펴야 한다. 초점착시가 좁힌 시야를 넓히고, 확증편향이 굳힌 판단을 조금만 흔들어 볼 때, 비로소 서로의 관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인지적 함정들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갈등을 키우고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같은 문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되찾는다. 상대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 하나가, 세대 갈등을 넘어 사회 전체의 대화를 회복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도기봉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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