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용서와 화해에 앞서

  •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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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22 06:00  |  발행일 2026-01-22
마창훈

마창훈

"국민은 개돼지다. 그냥 먹고 살게만 해주면 알아서 조용해진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내부자'에서 등장한 이 대사는 국민을 단순하고 분별력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권력자의 오만을 극 중에서 적나라하게 표현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탓인지 이듬해인 2016년에는 교육부 고위 관료가 이 대사를 인용해 대중을 비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사자가 파면되는 등 후유증 또한 만만찮았다.


그런데도 권력층이 대중을 경시하고 비하하는 현상이 사라지기는커녕,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자주 반복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먼저 근현대사를 통틀어 빚어진 반인륜적이거나 반민족적인 행위 등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이를 통한 처절한 반성의 부재를 꼽고 싶다.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헌의회는 일제강점기 국권강탈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거나,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로 이듬해인 1949년 활동이 중단되면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사례가 악질적인 친일 경찰 노덕술 체포 사건이다.


당시 노덕술 체포는 반민특위의 친일파 단죄를 위한 강력한 의지와 막강한 권한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풀려나면서 한계점도 같이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또 가깝게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군경이 가진 물리력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무력화를 시도한 사건도 그렇다.


내란에 동조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뻔히 드러난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전직 장·차관과 군 장성들.


그리고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한 진상규명 과정 등을 보면서, 문득 철학자 니체의 '인간은 본성상 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는 왜 '어떤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 망각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했을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간의 망각을 단순히 어떤 사실을 잊어버린 망가진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저지(방어) 능력'으로 해석한 대목을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기에다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과거의 고통이나 사소한 감정들에 짓눌려 단 하루도 평온하게 살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부연 설명은 더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특히 '망각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며, 또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서운함 등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작용을 통해 화해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공감할 수 있었다


다만,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 행태를 자행해 개인이나 공동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 이들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기준점만큼은, 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으면 싶다.


1979년 10.26 사건 직후 선포된 계엄 이래 45년 만이자 제6공화국 수립 후 최초로 선포된 비상계엄인 동시에 1972년 10월 유신 이후 5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으로 준엄한 법 앞에 선 피고인 윤석열.


그리고 그를 변호하는 이들의 사법질서를 조롱하는 듯한 괴랄한 행태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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