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갤러리 이서에서 만난 최선호 작가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뒤집어 놓은 캔버스 위로 짙은 쪽빛이 마치 깊은 바다처럼 관람객의 시선을 흡수한다. 쪽빛 위에 떨어뜨린 오일은 색의 경계로 번져 수평선 위로 보이는 섬이나 바위를 연상케 한다. 캔버스 옆면까지 칠해진 쪽빛은 좌우, 정면으로 보는 각도마다 관람자에게 다른 감상을 전한다.
갤러리 이서가 오는 3월31일까지 최선호 작가 초대전 '화가로 산다는 것'을 연다.
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조선 유교의 정신에 뿌리를 둔다. 8년간 간송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무수한 유물을 접한 그는 이때 가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제 그림의 뿌리는 유교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가 갖고 있는 단정함, 사대부 사랑채에 있는 문갑 같은 엄격함 등이 들어 있다"며 "정갈함과 단정함, 유교의 절제라는 개념이 꼭 들어간다. 여기엔 장식성이 하나도 없다. 장식성이 들어가면 당김, 끌림이 강하지만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간송미술관에서 일할 당시 제 머릿 속은 추사 김정희 시대를 살고 있었다. 동양화를 공부하던 제가 1988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뉴욕 현대미술전을 봤다. 18~19세기를 살던 제게 20세기 미술의 진취성은 큰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최선호 작.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결국 그가 뉴욕 유학 끝에 도달한 종착지는 다시 조선의 먹과 먹그림이었다. 최 작가는 "먹그림, 글씨에서부터 시작해 검정색을 쓰기 시작했고, 여기서 발전된 것이 블루인데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겉옷에 물들이던 쪽빛이 제게 꽂혔다"며 "특히 뉴욕 유학 당시 지도교수 중 한 분의 '너는 블루가 잘 맞는다'는 그 한마디가 제 예술적 방향성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의 그림은 면 분할 등의 측면에서 캔버스 위에서 정돈된 규칙을 갖는다.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를 넣어둠으로써 관람자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도록 한다.
그는 "작품들엔 제가 조선시대의 단정함과 현대미술의 미니멀을 동시에 체험했던 것을 표현했다. 작품들 안에는 굉장히 정리된 규칙이 있는데, 소위 구조 기하 개념도 들어갔지만 뭔지 모르게 푸근하고 깊은 맛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간격과 간격이 갖고 있는 정확성, 규칙성 등을 넣었고 조선이 갖고 있는 홀수 개념도 넣었다"고 말했다. "또, 뒤집은 캔버스의 원래 색깔을 그냥 둠으로써 동양의 여백을 나타냈다. 안 그리면 어떠냐. 바라보는 사람이 여백에서 느낄 수 있는 힘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부연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화가로 산다는 것'이다. 전업화가로 매일 그림을 그리는 그는 화가로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역설했다.
최 작가는 "화가로 산다는 것 자체가 몇 가지 필요 조건이 있다. 첫째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견디는 인내, 셋째는 천직으로서 죽을 때까지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저 역시 5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중학생 때 화가로 살기 위해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고, 이후엔 이 길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혁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