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유행 대신 취향, 가격 대신 가치…헌옷 찾는 사람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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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30 17:38  |  수정 2026-04-30 18:53  |  발행일 2026-04-30


대구 반월당역 인근 통신골목에 자리한 구제 의류점 빛티지에 진열된 옷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 반월당역 인근 통신골목에 자리한 구제 의류점 '빛티지'에 진열된 옷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1 사회초년생 박선영(28)씨는 대학 시절부터 명품 의류를 사는 게 하나의 목표였다. '언젠가는 나도 하나쯤'이라는 생각으로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려 했지만, 막상 취업 후 현실은 달랐다. 치솟는 물가와 생활비 부담 속에서 고가의 신제품을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신 빈티지숍으로 눈을 돌렸다. 또 다른 희귀한 제품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통해 개성까지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재미를 찾을 수 있어서였다. 박씨는 "예전에는 고가의 옷을 사는 것이 곧 만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가격이 비싸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더라"며 "가격 부담도 덜고, 유행을 타지 않는 옷들 속에서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르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2 직장인 장모(30)씨는 옷에 쓰는 지출을 80% 이상 줄였다. 기존에는 유행에 맞춰 매달 상·하의를 한 벌 이상씩 구매했지만, 한철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의식하게 되면서 옷장에 방치한 옷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장씨는 "예전에는 유행이 지나면 바로 새 옷을 샀지만, 요즘은 기존에 있던 옷을 꺼내 수선하거나 다른 스타일로 바꿔 입는다"고 말했다.


오래된 옷을 사거나 고쳐 입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을 넘어, 개성과 가치까지 고려한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의식하고 패션업계에서도 헌옷을 재활용한 신제품을 선보이거나 자원 순환을 앞세운 마케팅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대구 중구 교동에 위치한 빈티지숍 노모뉴 내부.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에서 색다른 가치를 찾는다는 철학으로 운영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 중구 교동에 위치한 빈티지숍 '노모뉴' 내부.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에서 색다른 가치를 찾는다는 철학으로 운영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고물가 시대 힙해진 헌옷 구매…'프루걸 시크' 트렌드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약 4조원 규모였던 국내 리커머스 시장은 지난해 43조원까지 성장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의류 수선 및 개조' 시장도 성장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의류 수선 시장 규모는 올해 48억300만달러(약 7조1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035년까지는 연평균 6.5%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가 지난해 미국 작가 다니엘 아샴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 재고 원단과 재활용 소재, 천연 섬유 등을 활용했다. <코오롱FnC 제공>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가 지난해 미국 작가 다니엘 아샴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 재고 원단과 재활용 소재, 천연 섬유 등을 활용했다. <코오롱FnC 제공>

요즘 소비자들이 '헌옷'을 찾는 이유는 뭘까. 고물가·고유가 시대 저렴한 가격이 한몫하나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다. 대량 생산·빠른 소비를 일컫는 패스트 패션이 환경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옷을 쉽게 사고 버리기보다 오래 입거나 재활용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주목받는 '프루걸 시크(Frugal Chic)' 라이프스타일이 더해졌다. 프루걸 시크는 절약(Frugal)과 세련됨(Chic)을 결합한 신조어다. 지난해 말 금융 인플루언서 미아 맥그래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의도적으로 검소하게 소비하면서도 만족도 높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을 뜻한다. 최근 고물가·고유가 상황이 맞물려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공감을 얻고 있다.


대구 반월당역 인근 통신골목에 자리한 구제 의류점 빛티지 내부.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 반월당역 인근 통신골목에 자리한 구제 의류점 '빛티지' 내부.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핵심은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고, 가치 있는 영역에는 투자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절약을 행하는 '짠테크'와는 차이가 있다.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나 중고 상품을 선택하는 식이다. 궁색함으로 여겨진 절약이 취향의 영역으로 재정의되는 흐름이다. 오래되거나 희소성 있는 옷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더욱 호응을 얻고 있다.


박씨는 "예전에는 유행이나 보여주기에 맞춰 옷을 소비했다면, 요즘은 저렴한 가격에 나만의 개성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며 "큰 투자를 하지 않고 옷을 구매하는 게 오히려 '힙'해 보인다"고 말했다.


비슷한 경향으로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도 언급된다.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제시된 올해 핵심 소비 트렌드다. 소비자들이 가격 그 자체보다 가격 뒤에 숨은 '진짜 가치'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래코드가 산업 폐소재의 순환 가능성과 재해석을 주제로 지난해 선보인 전시 RECOLLECTIVE MATERIALS. <코오롱FnC 제공>

래코드가 산업 폐소재의 순환 가능성과 재해석을 주제로 지난해 선보인 전시 'RECOLLECTIVE MATERIALS'. <코오롱FnC 제공>

◆빈티지숍 늘고, 업사이클링 제품 확산…업계서도 주목


업계에서도 이런 소비 경향을 주목하고 있다. 대구에는 중구 교동, 반월당역 통신골목 등에 구제·중고 의류를 취급하는 빈티지숍이 곳곳에 자리하는데, 최근에는 원도심인 북성로에도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북성로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며 빈티지숍도 5곳 정도 늘었다.


최근엔 남는 옷·헌옷으로 새 상품을 만드는 움직임도 나온다. 환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합성섬유에 대한 부담 또한 커져서다. 합성섬유는 석유 기반 원료로 만들어지는데, 석유가 귀해지면서 석유 소비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버려지는 제품을 새롭게 활용해 재탄생시키는 것) 브랜드 '래코드'는 자사 재고 의류를 해체·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는데, 지난 3월 말 기준 누적 3만4천614벌의 재고 의류를 되살렸다. 또 수선·바느질 전문가들과 협업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업사이클링을 고객이 직접 체험하는 원데이 클래스 '리테이블'을 운영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노모뉴에서 판매 중인 제품들. 오래된 섬유를 리폼해 가방·컵받침 등 소품도 제작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노모뉴'에서 판매 중인 제품들. 오래된 섬유를 리폼해 가방·컵받침 등 소품도 제작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 중구 교동에 위치한 '노모뉴(No More New)'는 환경을 생각한 옷가게다. 환경을 지키면서 옷과 관련된 일을 할 방법을 고민하던 권민주(36) 대표가 2019년 개업했다.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에서 색다른 가치를 찾는다는 의미가 담겼다. 오래된 섬유를 리폼해 새로운 옷을 만들거나 가방·컵받침 등 소품으로 재탄생시켜 판매하고, 기존 의류를 대여해주기도 한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도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와 함께 재고 의류와 폐원단을 수거해 자원화하는 '무한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자체 예산을 투입해 폐기 재고를 섬유 상태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분해·가공할 예정이다. 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집기를 개발하는 등 유통·공간 운영 단계의 폐기물 감축에도 나서고 있다.


대구 교동에 위치한 빈티지숍 노모뉴의 수선 작업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 교동에 위치한 빈티지숍 '노모뉴'의 수선 작업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격'과 '경험'의 결합으로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명예교수(소비자학과)는 "빈티지 의류는 잘만 고르면 독특하고 매력적인 제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을 준다"며 "젊은 세대에선 이런 옷을 고르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놀이이자 경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경을 고려한 소비라는 측면도 일부 작용하겠지만, 고물가 시대에 가격 부담을 줄이면서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며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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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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