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경북 대책위원회, 세입자안전네트워크 꼼꼼, 공익법률센터 도어, 구미참여연대, 민주노총 구미지부, 구미YMCA가 지난 2월 구미시청에서 구미 전세사기상담소 실적발표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용기 기자>
경북 구미에서 명의신탁과 무자본 갭투자 등을 동원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돌려막기'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영남일보 2025년 3월5일자 11면, 4월1일자 12면, 9월29일자 9면, 11월3일자 12면, 2026년 2월6일자 2면·10면 등 연속보도)의 피고인 5명에게 법원이 모두 실형을 선고했다.
구미참여연대는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들과 함께 대응해 왔다. 세입자안전네트워크 꼼꼼, 구미YMCA, 민주노총 구미지부, 공익법률센터 도어 등과 구미전세사기상담소를 운영하며 피해 상담과 실태 조사에 나섰고, 구미시에 전담인력 배치와 전수조사, 민관합동 대응기구 구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24일 구미참여연대에 따르면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1단독은 지난 22일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매도인 길모씨와 공인중개사 김모씨에게 각각 징역 4년6월을 선고했다. 건물을 넘겨받은 매수인 오모씨와 심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3년6월, 하모씨에게는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길씨와 김씨의 보석 청구도 모두 기각됐다. 법원이 매도인과 중개인뿐 아니라 이른바 '갭투자자'로 참여한 매수인들에게까지 실형을 선고하면서 전세사기 구조에 가담한 당사자들의 공동 책임을 엄중하게 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길씨는 구미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노후 원룸 건물 60채 가량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뒤 되파는 사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대출한도 규제를 피하기 위해 다수의 명의수탁자를 모집하고, 실제 거래가격보다 매매대금을 부풀린 '업계약서'를 제출해 담보가치를 과다 평가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인중개사 김씨는 매입 대상 건물을 고르는 투자분석표를 작성하고 신규 임차인과 건물을 넘겨받을 갭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거래 전반에 관여했다. 매매가 성사될 때마다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건당 약 5천만원을 받았으며, 매수인이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직접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거래된 건물들은 금융기관 담보대출과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합한 금액이 실제 건물가치를 넘거나 이에 육박하는 '깡통전세' 상태였다. 오씨와 심씨, 하씨 등 매수인들은 적은 자기자본만 투입한 채 대출채무와 보증금 반환채무를 떠안았다. 새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반환계획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건물의 담보채무와 보증금 반환 능력 등 임차인의 계약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정을 알릴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매도인과 중개인, 매수인이 형식상 별개의 계약 당사자였더라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눈 만큼 공모 관계와 사기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전세사기가 주택시장을 왜곡하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임차인들이 막대한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피해 회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이번 사건은 피해가 20~30대 사회초년생에게 집중됐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구미전세사기상담소가 지난 2월까지 접수한 상담자는 73명이며, 피해 내용이 확인된 63명 가운데 20~30대가 75%를 차지했다. 보증금 규모가 확인된 피해자들의 미반환 금액만 26억7천100만원에 달했다.
구미참여연대는 "매도인과 중개인, 매수인이 형식적인 계약관계 뒤에 숨어 책임을 서로 떠넘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단"이라며 "피해자의 관점과 무자본 갭투자 구조의 위험성을 충실히 반영한 합당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피고인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전세사기 범죄에 엄중한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형사처벌에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구미시와 관계기관이 실질적인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박용기
경북부에서 구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묻고, 진실하게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